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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답인생, 복에 대한 답을 구하는 질문자체의 역설. 다만, 삶에서 객관식 문제의 답을 찾아갈 때처럼 삶의 무너짐을 통해 오답을 지워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써는 다가온다(ref - 열정에 기름붓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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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기적과 모세를 의지하며 홍해를 지나던 백성의 발걸음과, 의지할 모세 없이 언약궤(말씀)를 의지하고 요단강을 건너는 모습이 대비된다. 의지를 지닌채 나아가는 과정이지만 종종 기적에 눈이 멀어 온 마음이 빼앗기게 되고, 요단강에서 발을 적시기도 전에 다시 홍해로 도망가며 기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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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구해야하는 때, 말씀에 의지하는 때 를 신앙의 단계로 오인하지는 않되 필요한 때에 어느것을 구해야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기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부터 다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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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게 된 길,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오답을 지워가는 과정으로써 이해됩니다. 무의미한 시간이란 없었습니다. 믿으면 잘 된다는 부분은 믿으면 따라오게 될 부산물에 불과할 따름이지만 꼬인 심사는 기복신앙처럼 느껴져서 거북합니다(강조를 위해 언급된 내용을 꼬아보는 내면). 그보다 그 이후에 그 모든 업적을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내게 있는 향유옥합을 깨뜨리는 것이 지혜로써 여겨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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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게된 공부, 랩실을 들어가기 전 1월말까지 시한부 인스타그램. 항상 공동체를 겉돌며 거리감을 유지하던 나에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자 한발짝 다가섬은, 내 세계에 갇혀있기도 한 벽을 무너뜨리는 그 과정의 때. 중보모임, 형제기도회 등으로 평소 인사만 하던 이들과 함께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제서야 나이스함을 넘어 조금 아플지라도 누군가 다가와준 것처럼 다가서야함을 깨닫는 어른아이의 시간. 이제는 가족으로써 다가오는 공동체 한사람 한사람. 그리고 다가선다고 생각한 그 모임들에서 반대로 받기만 하는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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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순간, 예수님 동행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삶이 무너졌었기에 이제는 지나치지 않을 수 있는 약자와의 연대. 그 자리에서 마중나오시는 예수님과의 만남. 소중한 것들을 놓쳐보았기에 다가오는, 평범함의 비범함. 크신 하나님께서 다가오심으로 저의 작음이 수용되어감이 감사합니다. 복음은 실제가 되어, 평범한 일상가운데 묻어나옵니다. 매일의 말씀과 기도속에서 만나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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