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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기도와 기도, 계속되는 그즈음

렘17: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떠나려던 저에게 찾아와주세요. 주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입니다.

감정이 지나간 자리를 이성이 덮고, 그 위를 은혜가 덮습니다. 단순히 이 시기가 저의 회복을 위한 시간이 아니기를 간구합니다. 목회자분들의 탄식소리가 맴돕니다. 작은일에 충성되지 못함은, 연쇄반응으로 주변을 눈쌀찌푸리게 합니다.

어찌보면 작은 일이라 넘길만하다고 잘 마무리지었다고 여겼으나, 기도하면 할 수록 이로인해 마음 어려워하는 누군가의 마음이 다가섭니다. 저의 감정적 회복보다, 이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저의 자신함, 스스로의 맹신으로 걸려넘어집니다. 넘어갈 헤프닝이 아닌, 저의 내면이 고침받는 시간이 되기를 깨어 반응하기 원합니다. 고난주간, 평안을 주시려 평안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이 시리도록 벅차게 다가섭니다. 잠시 멈추어야겠습니다. 골방에서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고난주간이 은혜의 때인 것은, 어쩌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저의 크고작은 죄들이 여실히 드러나며 결국은 부인하고 멀찍이 도망하여 떨어져있을 때 눈이 마주친 그 눈동자.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침묵에 저의 변론이 힘을 잃어가고, 저의 죄를 짊어지고 걸으시는 그 발자취를 직접 바라보고 점차 저의 발걸음도 그 방향으로 향하게 되며, 점차 가까이가고자 눈물로 달리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저에게 있음을 그제야 깨닫고 발걸음이 점차 재촉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인해, 저의 죄가 죽음이 그제야 인정되고 스스로의 인과응보적 정죄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함을 누립니다. 자유함은 방종이 아닌, 고난을 지나, 그러나 그 고난도 예수님의 대신 짊어지심으로 인함이며, 그제야 엎드려지는 회개의 기도속에서야 작은 희망을 발견함입니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런 제가 다시 주님앞에 설 수 없는 것이겠죠. 더이상 저의 작은 불순종으로 멈춰서지 않겠습니다. 단지 십자가 그 발아래 멈춰서 엎드립니다. 십자가의 다리는 저의 찌질함을 관통하여, 자기연민을 부드럽게 감싸시며, 낭비하시는 그 보혈로 결코 메워지지 않는 틈을 메우시는. 주께 나아갑니다. 십자가를 다리삼아 다시 그 앞에 나아갑니다. 긍휼을 간구합니다. 긍휼을 힘입어 나아갑니다.


[은혜 아래에 있네- 아이자야 식스티원]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던 나의 삶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로 연합되었네

그의 죽음은 우리를 살리려 함이요
그의 은혜 안에 우린 결코 정죄함 없네

십자가 죽음으로 나의 죄도 죽었네
부활의 영광으로 영원한 생명 얻었네

은혜 아래 있네 모든 죄에서 해방됐네
사랑 안에 있네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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