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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침묵의 기도 속에서

[묵상나눔] 마가복음 14:53-65

하나님, ‘동행’하다가 ‘멀찍이’ 떨어지는 저의 내적 갈등안에서, 드러나는 저의 수치들을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감당하다는 표현보다는, 다룸받기를 소망합니다.

침묵할때와 입을 열어야할 때를 분별할 지혜를 허락하시고, ‘내가 그리스도니라’는 말씀에 알아듣는 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감정과 저의 기준에 의한 혈기부림이 멈추어지고 침묵속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5)



[침묵의 기도 속에서]
넘어가던 일들을 고백함의 이유는,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끝내 도망친 모습이 저의 모습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가복음의 저자로 본인 스스로의 도망친 모습을 적어놓지 않았다면,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을, 제자에도 속하지 않는 익명의 누군가였을 것입니다. 이해타산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솔직한 고백(하나님 앞에서)은 그 수치와 죄들이 주님께 다룸받겠다는 결단처럼 다가옵니다. 마가는 도망치지만, 거리감을 두었지만,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그 ‘방향’을 향했다는데에 일말의 희망, 작은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 작은 가능성을 위해, 그것을 소망으로 두고 이 시간들을 지나가겠습니다. 그 가능성은 회개를 거치지 않고는 불가능한 길입니다. 죄와 수치들이 다뤄져가는 시간은, 은혜가 더이상 저를 포장하거나 타인에게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기위해서가 아니라, 결함과 실패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에 나타내는 기쁨에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명에 맹인인 나의 눈이 떠지는 것. 자원하는 마음과 경청하는 귀 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는 것. 1)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봄이 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거쳐, 가슴이 찢어질 듯한 회개의 시간을 거쳐 언제 다가올지 모를 소망을 다시 바라봄을 뜻합니다.

누군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것은 한편으로는 봄이 찾아온 것일수도 있겠지만, 변명하지 않고 엎드려지는 회개와 견디는 시간 속, 봄을 잠시 미뤄두겠습니다. 봄의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고 인내의 시간이 지나 다시금 찾아왔을 때, 이를 관통하는 그리스도의 계절을 기대합니다. 저의 요구대로가 아니어도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봄이라 지칭한 이 시간이 누군가를 요동치게 한다면, 그것은 봄이 아니겠지요. 이 시간들을 되감아 현명히 선택하고 기도의 결론에 순종했다면, 이런 후회들에서 자유했을까...

1) 트리시아 매캐리 로즈, 친밀한 중보기도, 예수전도단,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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