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고린도전서 7:8-24
본문의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겐 나와 같이 그냥 지내자고 하십니다. 결혼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서, 절제할 수 없으면 정욕이 불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독신의 은사로 부름받기도 혹은 결혼에 이르기도 어려운데, 결혼이후의 지켜야할 것들이 더욱 많아지는 듯 합니다.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지켜야할 것이 많고 크게보여서 투정부리는 저에게, 신부됨 이전에 내가 어떻게 자녀됨 이후 신부로써 격의 상승(?)이 이뤄졌는지를 다시 알게 하십니다. 그 대가지불이 격을 ‘버리시고’ 스스로의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심, 즉 보혈덕분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대기환경과도 같은 보혈의 뿌리고 바르고 덮으심이라, 호흡처럼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너무나 자주 인지하지 못하고 놓칩니다. 보혈의 가치를 되새기니, 결국 그 언약은 나를 지키시기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되신 주님께 ‘자녀됨’으로 자라나, 그리스도의 ‘신부됨’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갓난아이와 같은 시간들 속, 요게벳의 노래처럼 무사를 소망하며 역청을 바르시고 눈을감아도 보이는 듯한 지속적인 사랑의 눈으로 저와 눈을 마주하십니다. 창조의 법칙은 단순한 ‘~이 있으라’라는 주변 배경(background)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직접 빚으시고’ 수고하십니다. 배경처럼 그냥 ‘~이 있으라’라고 해도 될 법 한 권위자이시자 능력이 있으신 전능자이신데도, 상대적으로 비교조차 불가능할 작은 단위의 한 사람 한사람에게(나에게)관심을 가지시며 특별하다 하십니다. 나노 혹은 그보다 작은 단위의 공부를 하면서, 거시 세계(주변)에서 미시세계(나)를 바라보고 관찰하는데에는 꽤나 많은 수고와 관심이 필요함으로 여겨지기에 더욱 놀랍게 다가옵니다. 전혀 연관성 없는 듯한 과학에서 종종 창조의 법칙과 사랑을 발견하는 시간들이 놀랍고 감사합니다. 저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추론할 뿐인데, 그 내면마저 감찰하시고 모든것을 아시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모든것을 아심에도 인내하시는, 탕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사랑엔 더욱 믿기지 않을정도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되어, 스스로 낮아지고자(스스로 겸손하고자 노력이라는 행위를)하는 교만은 기분좋게 깨어지고 겸손은 자연스레 뒤따를 뿐입니다. 크신 하나님, 지극히 작은 자인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됨으로 지켜야할 언약은 이제 무한히 받은 비할 수 없는 크심을 보게 됨으로, 작은 믿음의 결단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의 작은 결단을 드리며 믿음의 싸움을 지키겠습니다. 영성과 지성은 대비되는 관계가 아닌, 상보적 관계임에 감사합니다. 연구를 진행해가며 편중되다고 여겨질 정도로 커져가는 이성은 날카로움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은, 더 알기를 원하는 따듯함으로, 사랑의 갈망으로 풀어져감에 감사합니다.
Q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