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고린도전서 6:12-20
친한 형님과 나눔을 하며 동의가 되는 부분은, 퇴근후에 밀려드는 보상심리적 부분이다. 너무 분주한 일상에 눌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과의 간극이 너무 큰 공허함으로 밀려든다. 워라벨 이라는 바람직한 방향성은, nine to six 가 아직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 혹은 특수직의 경우 그리 와닿지 않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론 스스로 선택하고 만족스러운 분주한 삶이지만, 공허함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은 미디어와 음행으로까지 연속성을 지니며 말씀과 기도로 다시 결단과 무너짐이 반복된다.
위의 상황은 장황했지만, 사실 결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일상의 고단함에 대한 투정이자, 반복되는 무너짐에 대한 자포자기의 심정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저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제가 주인이 되며, 인스턴트식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고난과 심판을 수용함에 작은 결단을 내어드리지만, 바로 그 그리스도의 지체인 몸이 육신의 정욕을 따르니, 예수님의 무덤과 연합됨은 허공의 메아리로 그쳐지게 됩니다.
고린도 교인들과 같이 ‘스스로 지혜있게 여기며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교만이 철저하게 깨어지기을 간구합니다. 교만이 가장 큰 불순종이자 죄임에도 가벼이 여기며 넘어가던 저의 태도는, 끊기지않는 미디어의 유혹과 연쇄되는 음행들로 성령의 전을 파괴합니다. 예수님, 이런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무너짐과 심판이 임한 그곳이 다시 스스로의 바벨을 세우는 곳이 아닌, 예수님의 무덤과 마주하게 되고 연합되게 하소서. 기도와 말씀으로 도우심을 간구하며 성전의 재건축에 동참하고, 저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가, 예배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오늘도 저를 만나주시어 깊은 교제 속 때로는 소소한 대화속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육신의 정욕을 덮는 사랑으로 누려지기를 간구합니다.
Q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