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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우상을 향한, 바울의 권면

[묵상나눔] 고린도전서 10:14-22

저에게 우상이란, 저의 탐욕의 대상인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여기서 파생된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이웨이’ 입니다. 떡이 하나요 우리가 한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7)는 말씀에, 우선은 한 몸 됨을 위해 다룸받아져야 할 저의 내면을 돌아봅니다. 장사복음에 초점이 맞추어진 요즈음의 과정 속 나의 죄로 인해 초래되는 쓰라림과 가시로인한 고난 및 심판은, 저를 향한 가장 강력한 ‘설득’입니다. 때로 듣기싫은 혹은 부인하던 이야기가 주님이 주시는 말씀임이 설득될 때, 막힌 귀가 열리고 눈이 뜨여집니다. 제가 ‘원하는’ 부드러움의 방식이 아닌 저에게 ‘필요’한 방식들로 찾아오시니, 막힌 귀를 향해 언제나 모든 상황 속 저를 향해 말씀하시던 그 음성들이 이제는 들려지는 듯 합니다.

고린도전서 말씀들을 통해 사도바울의 여러 권면들이 저에게도 다가옵니다. 결론된, 내려놓음으로 성취되는 권리들이 이제야 말이아닌 적용이 됩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벽돌만을 골라 성전(이라 이름붙인 균형을 잃고 흉측한 기형, 바벨)을 짓던 저에게,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슥 4:7)”는 말씀이 저를 관통합니다. 이제는 성전이 성전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고난과 심판이 또다른 벽돌이 됩니다. 부서진 채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받는 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성전건축의 벽돌들을 잇는 접착제가 됩니다. 이제는 저의 입술로 그리고 한손으로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안기어, 저의 가장 큰 대적인 ‘제 안의 죄악’을 향해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고 선포 하게 하십니다. 관통된 말씀이 이제는 선포가 되어, 기도가 됩니다.

주님은 내 사방의 불로 둘러싼 성곽이십니다(슥 2:5). 내가 바라보기에 좋아보이던 옛 솔로몬의 성전이 아닌, 성령의 불이 임하는 봉화대 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의 입술로,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발걸음을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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