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출 21:12-36
주님, 이 말씀이 저에게 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를 우선 원합니다. 제 관성은 여전히 상해를 받은 것이 떠오를 뿐인데, 현재 종의 규례를 듣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은혜와 더불어 심판의 공의 앞에 '다룸받아야하는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합니다.
어제는 왼편을 돌려대는 것을 추상적으로 고민한 정도였다면, 오늘은 그 구체적인 예시들을 들어주시며 제가 돌이켜야하는 부분들에 대해 다루어주시는 하루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단호함에, 주춤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배상 속에서 이런 법이라도 있기를 원하는 피해자의 울분을 풀어내시고, 가해자가 적절한 처벌을 거쳐 반성의 기회가 되는 시간이 됩니다. 충분히 서로가 돌아보는, 공의가 바탕이 되는 화해. 그러나 어느 쪽이던지 승리라는 이름의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된다는 내면적 태도를 고수하며, 사이다만 원하던 저를 고백합니다. 누군가에겐 피해를 입었으나 누군가에겐 가해를 입힌 저의 삶을 올려드림으로, 십자가를 지나서야 누리게되는 8복이 아직은 쓰린 듯 한 느낌을 받는 점에서 긍휼하심을 간구함으로 의탁할 뿐입니다. 본문은 단호해보이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필요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위한 넉넉함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단호하게 선을 그으신 그 선이, 마음이 풀릴 때 까지의 잠재적 보복성을 지닌 저의 내면을 멈추시는 "정지선"이자 지키시는 "생명선" 으로 다가서는 오늘의 하루를 간구합니다.
한 영혼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할 수 있는 넉넉함을 저에게도 부어부시기를 원합니다. 제 스스로를 피해자로만 여긴다면 마음이 어렵기만 하고 8복은 저주로 다가섭니다. 각각의 자리마다 양면성을 지닌 저를 인정하고 주님께 다룸받음으로, 저를 참으시는 주님을 기억함으로 변화되는 하루되길 원합니다. 맡은 직분이 높아지는 자리가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섬김의 자리로 흘려보내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인정을 받아가지만 연차가 낮을 때 겪었던 관계적 어려움과 인정받지 못하던 그 시기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나봅니다. 내면은 동일하지만, 외양만 변화된 듯 합니다. 인정에 대한 부분이 건드려질때, 요동치는 마음 속 저의 상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저의 교만을 바라봅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자리들마다, 십자가를 통과하는 삶을 고민하는 하루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에게 쥐여져있다고 착각했던 무기들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고가는 삶을 고민하고 고백합니다.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삶을 다짐하며, 홀로 걷게 두시지 않는 주님과의 동행함을 기대합니다.
인정받아야할 부분이 아닌, 저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상을 간구합니다. 치장하느라 소모되던 마음과 감정이, 사랑에 집중될 수 있도록 지혜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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