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열왕기상 12:12-24
묵상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왕 혹은 리더에 대한 묵상에서 시작해서 왕이신 예수님, 마지막엔 성경속에서 적용되는 나의 역사를 돌아보게 됩니다. 말씀에 등장하는 노인과 어린 사람들의 자문은 나이로 인해 갈리는 것이 아닌, 왕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24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삶의 모든 순간들마다 돌이킴의 은혜가 허락되는 때에, 돌이킬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주세요. 말씀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회사에서 예수님의 향기가 뿜어나오는 한 사람으로 인해서 마지막의 그 시간들을 감사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느 자리로 가던 되고싶던 이상향의 모습인데, 능력있고 친철합니다. 저는 시야가 좁고 고집이 있어 스스로도 완고한 사람이라는 것이 인정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성품은 넓은 시야도 부드러움도 아닌 관계에서의 인내라는 생각입니다. 다그침보다 한번 직접 보여줌으로써, 직접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지켜봐주고 알려줌으로써 저를 용납하고 인내하는 그 시간들이, 이후에 제가 흘려보내게 될 사랑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듯 합니다. 풀어지지 않는 저의 완고함에 곤혹스러워했는데, 부어지는 사랑은 너무나 쉽게 그 벽을 허물어버리시는군요. 저에게 없는 것 같던 은사들을 채워가시고 협력케하심으로 너무도 간단히 해결되는 저의 문제로 인해, 제 문제보다 예수님을 작게 여기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사랑의 인내는, 삶의 자리가 섬김의 자리로 마쳐지는 것이 아닌 한 인격체로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하게 하시며, 섬김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나라의 동역자를 세워가는 과정으로 초청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연 삶의 자리에서 대단치 않은 나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까? 오히려 부적응자로 비춰짐은 아닐까? 네 주님! 저의 힘으로써가 아닌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나아갈때, 저의 연약함이 인정되는 그 순간부터 약할때 강함되시는 주님의 일하심이 뚜렷해집니다.
왕이신 예수님. 저의 마음가운데 찾아주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감이 내가 원하는 단 한가지 소원입니다. 대림절 예수님이 오신 그 의미가 무엇일까? 를 다시 고민해보고 기도하며, 주님을 향한 갈망이 회복되는 시간에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 벧전 1:8-9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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