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교만은 무엇일까. 때때로 주변을 눈살 찌뿌리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들을 하다가 교만에 대한 생각들을 나눌 기회가 생겼고 감사한 권면의 시간도 있었다.
친한 형님과 대화하던 중 내가 가진 교만이 무엇일까 하는 것에 대한 윤곽이 잡힌 것 같다. 사실 약자에게 관대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약자와의 연대로 나아가지는 못했었고 다만 내가 가진것을 크게 희생하지 않아도 반대로 내가 누리는 심리적 만족감(feedback)이 컸기 때문이다. 약자와 연대하기 위해서는 그 삶으로 뛰어들어야함에도 한걸음 물러선 거리감은 유지한 나이스함으로, 내 삶을 지키는 선에서의 도움 정도로 착각했었다. 약자와의 연대와는 별개로, 나와 비슷한 수준을 가졌다고 여기는 사람들과의 대면함 속에서는 교만이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듯 했다.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co-work의 영역이라면 모를까, 부딪히는 관계의 경우엔 상대를 찍어누를 생각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넘사벽이라 경외의 수준이라면 생각을 달리했겠지만(비겁한 물러섬), 내가 그리 뒤쳐지지 않는 것 같기에 내가 가진 힘이라 생각하던 것에 취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을지언정(혹은 비언어적 표현들로 외부로 표출되었을 법한)속으로는 여러 생각들과 계획들이 정리될 뿐이었다.
내 삶에서 21살부터 공부를 시작했지만 큰 실패는 한번밖에 경험하지 못한, 생각보다 온실속의 화초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다. 생각보다 내 삶에서 내가 선택하고 실제로 성취된 일들이 많아서(편입, 학과생활, 랩실, 대학원...)교만은 늘 기저에 깔려있는 것들이었다.
한번 삶의 무너짐을 통해, 그리고 가까운 지인의 용납과 권면으로 인해 잠잠히 나아감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예전 이국종 교수님의 인터뷰를 잠시 인용하자면, 의사가 된 이국종 교수님의 어머니께서 이국종 교수님에게
‘세상에는 핫바리의사들이 많지만 그 핫바리중에서도 제일 핫바리인 니가 다른사람의 인생에 그정도 임팩트라도 끼칠수있다는걸 영광으로 알고 살아라’
라고 하신 말씀이 지인의 권면 속 떠올랐다. 사실 삶에서 여러 언덕들을 넘을 때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많고 분명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그 때 부터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명이 될 뿐인데. 대학원 진학이 뭐 그리 자랑할 건덕지라고 어깨가... 그저 수많은 대학원생중 하나가 될 뿐인 것인데, 내 스스로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이 스믈스믈 올라온 때였다. 혹여 드러내야할 때는 내 스스로가 아닌, 남이 나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핫바리인 나는 왜 이랬을까 하는 이불킥 각인 생각을 품고 있었나보다. 보잘 것 없는 나를 좋게 봐주셔서,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을 뿐인 핫바리.
또한 앞서 언급한, 나와 맞지 않는 이들과 함께함이 무엇일까 를 다시 고민해보게 되고, 그 부분이 해결되어야 진정한 약자와의 연대가 시작되지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를 마음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적질보다는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기란(possibility)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다가온다. 여리고성을 돌면서도 여전히 쇠붙이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내 꽉 쥐여진 주먹은, 언제쯤 펴지려나~
하나님의 크심을 알게 되어, 나의 작음을 알게되는 상대성의 갈림길 앞에 이제야 서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교만의 성찰이지만, 결론은 문제가 아닌 문제보다 더 크신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함이 시작이자 끝이며 그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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