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마가복음 12:1-12
저의 체험이 우선되던 나눔들은 그것도 말씀앞에 다루어졌기에 괜찮다고 합리화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기도를 하며, 제가 정말로 말씀과 기도앞에 바로세워져있는가 를 다시금 고민해보게 됩니다.
‘기도’와 ‘말씀’앞에 바로서야한다는 것은 알지만 요즘은 삶에서 적용되는 말씀에만 무게추가 확 쏠려서, 기도는 잘 되어지지도 않고 그리고 시도하려는 노력도 없어져갔습니다. 그런데 기도회 중, 전도사님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기도란 잔인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내면에 고쳐져야할 부분과 대면해야하기 때문이라는 기도의 내용이었습니다.
최근 기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지만, 기도를 시작하려할 때 계속 멈추어지고 다시 말씀만 붙잡고있는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붙든것이라기보다는 지식을 채우거나, 하루의 신앙생활 중 시간의 총량을 충족시키는 정량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였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기도를 해보고나서야 잔인하게까지 여겨지는 시간을 통해 저의 내면을 돌아보며, 저의 요구(want)가 말씀과 기도보다 앞선다는 것을, 원하는 것(want)와 필요(need)를 분별해야함을, 그리고 결론적으로 잠시 멈추어야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고민해야하는가? 에 대한 대답은, 피상적 언어로는 쉽게 답변가능하지만 저의 내면은 그렇게 평온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지나고나서야,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이 진정한 잠잠함 속 평안을 누릴 수 있음에는 신뢰하고 믿고 있습니다.
누군가에대한 마음과 더불어, 본문의 모퉁이돌 또한 기도해보게 됩니다. 나를 괴롭게하는 이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세우신다... 기도를 통한 내면을 바라볼 때 타인에 대한 원망을 지나, 누군가를 괴롭게하는 저의 모습이 오히려 선명하게 보입니다. 나의 가능성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로써, 진실되게 대면이 되고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모든 순간이 기도가 된다는 말 처럼, 눈을감고 언어를 내뱉는 시간이 아니라 저의 내면이 다룸받고 주님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울처럼 비춰지는 모습은 예수님의 눈동자로 다가옵니다. 조급함에 휩싸여서 비춰지는 곳이 예수님의 눈동자라는 것을 인지하지는 못하고, 그에 비춰진 제 스스로의 괴물된 모습만 바라보며 실망했었는데. 조금 뒤로 가니 예수님의 얼굴전체가, 그리고 따듯한 미소가 보입니다.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환난을 함께 지나가는, 작은 우산 (0) | 2019.04.10 |
|---|---|
| 끝까지 견디는 자 (0) | 2019.04.08 |
| 행동반경 (0) | 2019.04.02 |
| [묵상나눔] 마가복음 10:46-52 (0) | 2019.04.01 |
| [묵상나눔] 마가복음 10:13-16 (0) | 2019.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