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먼저 밝히자면, 나중에 해외봉사 단체에 들어가 꾸준히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재정적으로 안정되며 조언해줄 수 있는 지식은 쌓이겠으나, 해외 봉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탁상공론 마냥)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이가 들어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 때가 금세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봉사라는 것이 꼭 나중 문제인가 하는 고민을 하던 와중에, 나중으로 미룰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바로 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경험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처음 봉사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 돈으로 좋은 나라에서 추억을 쌓을 시간도 부족한데, 왜 구태여 내 돈을 들여서 힘든 일을, 잘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며 하는 것일까?
하지만 한번 다녀온 이후에는(첫번째는 인도네시아 선교지에서 유치원생들에게 수업을 했었다), 고생이 추억으로 바뀌어서 인지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학생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값진 것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봉사 준비 때부터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해외봉사를 준비하는 시기가 학교 시험 기간과 겹쳐서, 팀원들과 시간 맞추고 면접 보는 것에서도 서로 마음 어려워하기도 했었다. 마을잔치 때 하는 팀 공연 및 단체공연은 즐거움이 아닌 부담감으로 시작했었다. 아직 서먹했던 전체 팀원들과의 관계도. 성적과 맞바꾸었다고 서로를 위로해보아도 미얀마를 도착하기까지는 마음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동안의 마음의 어려움들과,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쓴물들과 생색들이,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경험은. 오히려 어색해하던 우리에게 먼저 손 내밀어주던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받고야 말았다.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첫 수업을 마치고 봉사단 팀원들의 눈빛에서 빛이 나온다고 느꼈던 것이. 쉬는 시간,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하면 더 좋은 것들을 전해줄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수업에서 좋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 되어갔던 것 같다. 같은 팀이지만, 서로 다른 반을 맡았기에 어쩌면 팀 이기주의로 될 뻔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되는 진짜 우리 가 될 수 있었다.
매일매일의 아침 등교길이 가장 기억날 것 같다. 먼저 마음을 내어준 아이들이, 등교길에 벌써부터 나와서 선생님들과 함께 가려고 기다리던 모습들. 아끼던 간식들을 선생님 손에 쥐어 주고는 손을 꽉 쥐던 모습들. 한국에서는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한 아이가 전해준 사과는 너무 달고 맛있어서 씨앗까지 먹을 뻔 했다. 우리가 지나갈 때면 한명 한명씩 달려와서 서로 선생님의 팔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던 모습도 떠오른다.
해외봉사에서 또 한가지 꼭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함께 해준 미얀마 통역 친구들이다. 나와는 달리 엄청나게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녔는데, 사실 통역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수업은 전혀 없었던 것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위드팀과 함께해준 친구는 ‘미미’이다. 우리 위드팀 5명중에서, 4명의 봉사자들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통역해주고 아이들과 함께 해주느라 가장 고생했다. 마지막 날 즈음에는, 너무 열심히 뛰어다닌 나머지 감기까지 걸렸어서 잠시 쉬라고 했는데도 괜찮다고 수업 마치고 쉬겠다고 하며 다시금 뛰어가던 모습이 참 미안하고 고마웠다. 웃음이 참 아름다운 미미. 미얀마에 잘 적응한 것도 너의 역할이 참 컸던 것 같아.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너의 미소가 계속 떠오른다!
이번 해외 봉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았었지만 내향적인 성격에 발목이 잡혀 맏형 역할도 못해준 것 같았다. 미얀마라는 국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을 때, 나와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부딪혀보고 싶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의 한계점에서, 내면에서는 많이 깎이고 부딪히고 했던 시간이었다.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앞으로 하고싶은 봉사 에 대해서도 방향성이 잡힌 것 같다. 미미와 얘기할 기회가 많았었는데 미미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했다. ‘오빠는 왜 미얀마에 봉사하러 왔어? 그리고 미얀마에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질문이었다. 미미가 오해하지 않고 마음 다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어떻게 전달해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부모님을 선택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잖아?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을 뿐으로 주어진 좋은 환경들에서 자란 것들은 내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진 이 선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누가 더 좋고 나쁘고가 아닌, 받은 것을 나눈다면 의미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 미얀마에 대해서는?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빈부격차가 크다? 우리가 봉사활동한 동파운지에서 30분만 차 타고 나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잖아?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같이 울고 웃고 아쉬워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상문을 쓰고있는 지금도, 아직 미얀마 날씨에 적응된 몸 상태라서 한국의 날씨는 기절할 듯 춥다. 새벽에 일어나는게 적응되어서 일어났다가, 한국이지…하고 다시 눕곤한다. 아쉬워서, 해외봉사를 같이 다녀왔던 친구중에 몇명을 찾아가서 다시 추억을 떠올린다. 후유증이라면 후유증이지만, 기분 좋은 후유증이다. 평생을 못 잊을 것 같다. 바쁜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지만, 좋은 쉼표이자 좋은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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