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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마지막을 향하며

요즈음의 시기는, 그동안 감정의 종노릇하던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고 이제는 조금 잠잠해지는 시기입니다. 그때에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했던 시기였고, 지금은 그만큼 회복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저에게 있어 마지막을 향하는 시기입니다. 자격없는 저를 셀장의 자리로 세우셨던 그날, 가장 먼저 알게하셨던 것은 저에게 사랑이 없음에 대한 것이었고, 저에게 없는 사랑을 부어달라고 부르짖던 때가 기억납니다. 결국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리에 세워짐은, 사랑을 가장 많이 누릴 수 있는 감사함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할 수록, 매주 주일이 지나갈때마다 한사람 한사람과의 시간은 더욱 소중해지고 나눔들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 같아요. 셀장이라는 자리가 무언가를 주는 자리인줄 알았었는데. 오히려 받고 가는 채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걱정이 되었어요. 내가 셀장이라는 직분을 맡게 된다면, 너무 진지하기만 하고 재미없는 셀모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저에게 없는 은사들에만 한탄하던 그 때에, 셀을 밝게 해주는 비타민 같은 셀원을 이미 세워주셨어요. 서로가 다른 환경속에서 자라왔고 다른 은사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하기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퍼즐 하나하나가 맞춰져감을 바라봅니다. 퍼즐의 그림을 이미 완성하신 주께선 그 그림을 보이시고, 퍼즐을 완성해가시는군요.

 

저에게 왼쪽의 맨 뒷자리는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셀원과 함께 앉는 자리입니다. 다른 의미로서가 아니라, 친한 형 동생으로 먼저 만나게 되어서 다른 부담감없이 마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가끔 앞으로 나가서 예배드리며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역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오게될 그 날을 기대하는 그 시간들만큼 값진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것이 어색하던 저희가, 이제는 서로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나누고 웃고 장난을 칩니다. 맞지않는 옷을 입고 멋들어진 말을 장황히 늘어놓지 않고, 솔직한 나눔들이 나누어지곤 합니다. 솔직함과 신중함은 분명 다르지만, 그 나눔들이 방향성을 잡아갈 수 있도록 그 때마다 셀원들 가운데 한명을 통하여 잡아가시는 군요.

 

예수님. 저희의 두려움과 죄들로 다시금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세우곤 합니다. 나의 죄들이 예수님의 대속하심으로 인하여 죽게되고 죄들은 죽음으로 인하여 효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만이 일하십니다.

 

주님. 제가 고민하던 부분이었던, 나는 교회안에서만 살아가는 존재인가? 하는 고민에 대하여 여러 훈련들로 인도하심이 감사합니다. 세상속에서 효력을 잃어버리고 선데이크리스천이던 저에겐, 사람들 속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갈등하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대적 불의속에서 침묵하곤 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몇몇 목회자들의 잘못된 길로 접어든 모습을 보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구분짓고 정죄의 시선만을 보내곤 했었습니다.

 

여러 훈련들 속에서야 들었던 생각은, 과연 저러한 실망시키는 무너진 리더쉽의 모습이 과연 저들의 책임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과연 제가 저 위치에 있고, 저러한 상황과 조건들 가운데에서 나라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니, 죄인중의 괴수인 저에겐 그다지 나아보이지 않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무관심한 이에겐 반응하지 않습니다. 개독이라 욕먹는 시대속에서, 그들을 향하여 또한 저를 향하여 바라보는 시선속에, 크리스천이라면 보일 것이라 기대하는 기대감들을 보게 됩니다. 복음이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것이 아닌, 실제 삶으로 살아내는 것임을, 어렵지만 그 삶을 살아내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요즈음 어수선한 상황속, 골방에서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할 수 있는 것 외에, 살아내는 복음에 대하여 도전이 되던 때에 그 자리로 나아가 보았습니다. 만약 기도를 해야한다면 그자리에서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내던 타 종교인들을 보았을 때에, 실천하는 그들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행동하는 몇몇 종교의 이름을 내건 이들의 모습속에서, 남의 일이 아닌 오히려 책임감을 지닌채 그러할 수록 나아가는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참으로 쉬웠으나, 책임감을 지니고 나아오기까지의 그 발걸음이 왜이리 어려웠던지 모르겠어요. 막상 나아오니 생각보다 쉬웠다는 것을 알았지만요. '나는 그렇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들은 소수의 무리가 전체의 고귀한 뜻을 흐리고 있다.' 하고 비난과 정죄의 시선을 보내는 그 시간에, 진정 바라보아야 할 것과 행동해야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문제를 바라본다고 문제가 해결됨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신 이와의 시선의 마주침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음... 아무튼! 요즈음의 마지막 시기가운데 셀원 한사람 한사람은 저에게 있어 소망입니다. 헤어질 날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도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을 떠올릴때면 웃음과 기쁨이 새어나오다못해 터져나옴을 느낍니다. 벌써 11월이에요... 저희 서로들에게 감사함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슬프지만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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