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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주체성의 깨어남

아... 열기가 식기전에 끄적이고 자야겠다!
오늘은, 아니 어제는 집회를 다녀왔다.
결혼식이 있어 대전에 갔다가 친한 동생을 만난 이후에
뒤늦게 집회에 참석할 결단이 되어 집회로 나아갔다.
정치란 것은 나에게 다른 세상의 얘기고 어려운 이야기이자, 기대감 없이 어차피 그게그거지 하는 식의 태도를 지녀왔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설교말씀중에 몇가지 울림이 있던 선포들이 떠올랐다.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는 성경에 쓰여있고, 기도를 해야할 것은 신문에 나와있다 는 인용문구가 크게 와닿았다. SNS를 보니, 광고와 음란물의 홍수속에서 요즈음 순기능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어린아이가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것을 보고도 도전이 되었다. 메이플(온라인 게임의 이름)이 하고싶은 시간에 나와서 이러고있다고. 이러려고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이 든다는, 아이의 시각에서의 말 속에서 아이의 눈높이이면서 깊은 통찰이 있는것 같다. 피식 하고 웃게 될 수도 있었겠으나, 내가 나보다 어른에게 받고자하였던 인정을 정작 나는 못해주고 있다는 생각과 훈련들 속에서 그 아이의 말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오히려 어려운 용어들을 쓰지 않고도 이해가 가는 쉬운 풀이에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달까...

집회는 원래 혼자서라도 갈까 고민하다가, 함께 1년간 공부를 준비하던 친한 형님이 계셔서 연락을 드려보았다. 지인들과 함께라고 하시는데, 그냥 나도 왔으면 좋겠다고 함께하자고 하셔서 좀 더 마음 편하게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올라가면서 지하철에서 기도할때에 사실 걱정이 되었던 부분은, 집회가운데 과도한 분노가 폭발하지는 않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분노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폭력의 형태로 표출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하게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것 같은 그 집회의 자리 자리마다, 분노와 함께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폭력을 지양하고 평화적 집회를 외치는 모습에서 그러한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이 큰 영광으로 느껴졌다. 그러한 일원이 될 수 있어서.

형님과 형님 친구분들을 드디어 만났다! 첫 마디는, 이러한 집회가 처음이라고 하였던 내 소개와, 몇번 집회를 경험해보았다는 형님 친구분들의 말들이었다. 이전에 불의를 목도하고 거리로 나왔을 때에, 그 집회에서 들었던 생각은 깨어있는 시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기쁘다고 좋아하시는 그 형님 친구분의 모습이 와닿는다. 그러면서 반 우스개소리로, 집회가 처음인 분들이 많다고. 그러니 부끄럽게 여기지는 말라고 잘 왔다고 하신다. 처음 나온 사람들이어야 이렇게 많이 모인다고, 몇번 집회를 참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힘들거나 지쳐서 못왔을것이라고, 이렇게 많이 모이진 못한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는데 뭔가 멋있었다ㅎ 지나쳐온 몇몇 사건들에서 이미 시작한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라서 끌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 좋았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도 나눠보고, 함께 촛불을 들고, 외치는 시간이었다.

이번 집회를 참석하며, 비록 나는 첫 집회였으나 이 집회가 단회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버스타고 집회장소로 올라가면서 오마이티비를 라이브로 시청했는데, 어떤 단체들에 속한 대표님들이 나와 발언하는 시간이 있었다. 첫 언급이, 위안부 문제라는 것과 또한 세월호 그리고 북한의 도발등... 일련의 사건들이 나눠진 독립적 사건들이 아닌, 연계성이 있다는 것이다(분노한 이유, 정체성이 깨어난 이유). 그 사건들에서 슬픔과 좌절감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슬픔들 속에서 점차 주체성을 훈련받고 있었던 것 같다. 역사속 아픔들을 그저 역사시간에만 배우던 나의 세대에서, 그냥 역사속 '사건'일 뿐이었던 일들이 아픔을 통해 더이상 흘러가는 뉴스거리가 아닌, 삶으로 다가옴을 느낀다. 북한의 도발때도 이슈가 되었던 것은 SNS를 통해 예비군들이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었는데, 군필자로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고, 말년병장으로써의 태도가 아닌 좀더 와닿는 시간이었던게 기억난다.

주체성이 깨어난다. 관계의 어려움과 극심한 소극적인 태도들에서 방어기제들이 나 스스로를 제한하는 상황속에서, 나만의 세상에 갇히지 않고 틀을 깨고자 심적으로도 상황앞에서도 끊임없이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요즘이다. 조금 적극적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조금은 편파적이어야 하는 때인것 같다. 설교말씀을 인용하여 덧붙이자면, 미시적 관점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온당하나, 거시적으로 바라보았을 때엔 그리스도인이란 때론 편파적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시나, 약자에게 편파적으로 사랑을 부으시는 분이시다. 그러한 성품을 닮아가는 우리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한걸음 물러나 객의 위치에서 바라보던 내가, 오늘은 소극적인 틀을 깨고 무대위로의 큰 걸음에 한발자국을 보태는 편파적인 하루를 보내었다. 이 한걸음이 별거 아닌 것처럼, 나 하나 간다고 무언가 바뀌진 않을 것이라 누군가 말할수도 있지만, 또한 반면에 이 한걸음으로 인하여 세상또한 나를 변화시킬 수 없음또한 믿는다. 내가 세상을 바꿀수 없을지라도, 또한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 그리고 그 큰 발자취에 동참했다는 것?

집회를 마치고 형님 친구분들과 인사할 때 마지막 인사는 이것이었다. '혹시 2주 뒤에도 오나요? 시간나면 한번 보러와요~ 음... 그렇지만 가장 좋은 것은 2주뒤에 모일일이 없는 거겠죠?'하는 말이었다. 짧았지만 강력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뉴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구나...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의 얘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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