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이사야 29:1-14
1. 빛과 소금->밤에 다니며 소금은 맛을 잃습니다.
2. ‘기이한 징벌’ 가운데 누군가 로 부터, 즉 사람으로부터가 아닌, 내면의 양심과 기도앞에 서게 됩니다.
3. 영적 문둥병은 민감함으로 변화되어, 작은 감각들이 크게 느껴져 때로 더욱 크게 쓰라리다 여겨지지만 살아있음을 누립니다.
빛을 잃은 등불이자 맛을 잃은 소금으로써, 삶의 근간과 은혜가 통째로 흔들리는 시간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온전히 수용되며, 내 스스로의 모습이 받아들여지고, 전심으로 엎드려 기도하게 되는 순간순간의 삶의 자리들에서 말씀이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낍니다.
고질적 문제이던 영적 문둥병의 문제들은, 말씀의 검이 메스처럼 심령을 쪼개며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변화되어갑니다. 그래서 요즈음의 하루하루는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유무에 따라 편차가 큰 편입니다. 묵상나눔은 나눔에도 목적이 있지만, 블로그에 일기처럼 기록해두고 틈틈히 들어와서 곱씹어보며 하루를 살아내는 마음에 새기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잠든 백성과 봉인된 말씀이라는 본문의 말씀이 마치 저의 최근의 모습같습니다. 입술로는 부르나 마음이 멀어져 영적인 잠에 빠지고 말씀이 가려지는 듯 하던 모습들에서, 때때로 속은 쓰릴지라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각의 깨어남은 감사함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중보하는 특권 및 역할과 더불어, 선행되어지는 성도로써의 삶을 소망합니다. 삶으로 파송받은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가고자 하지만 때때로 저의 신앙을 자랑하는 포장지로 쓰일때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속된말로 컨셉에 잡아먹히는 컨셉충(?)에서 벗어나, 본질을 바라보고 마음속에서 성령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구원과 거룩으로 가는 과정 중, 너무나 많은 시간을 SNS에 빼앗깁니다. 랩실생활을 하며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통로로써의 초기 목적은, 점차 저의 허영심과 과시를 위한 허울로 드러납니다. 이 시기동안 인스타그램은 잠시 멈추고, 페이스북은 최대 하루 한번으로 자제하겠습니다. 미디어금식의 결단부터 시작되는 남는 공허함의 시간이,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들로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광야에서의 주님만 의지하는 시간과 더불어, 일상 영성 속 작은 기쁨을 향유하며 동행하는 시간이 되길 간구합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현 이스라엘의 상황이 저의 영적 문둥병과 같이 보입니다. 선택받은 선민의식이라는 정체성이 오히려 스스로를 작은 세상에 가두어서, 친구됨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는 듯 싶습니다. 오랜 신앙생활 속 스스로 괜찮다 여기던 교만이 깨어지는 시기가, 선민의식이 허물어지고 맹인되었던 눈이 뜨여져서 그제야 예수님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간구하기로는 먼저 성도됨으로 깊은 교제 속, 근원적인 변화가 시작되기를 간구합니다. 속임없는 온전한 회개로 긍휼을 입고 나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이 인정되어 저의 작음이 수용되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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