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갈라디아서 1:1-10
어느 곳 어느때라도 한가지 놓치지 못하던 소명은, ‘세상으로 파송받은 선교사’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20대 초반, 목회에 대한 고민과 기도끝에 세상으로 나아가는 선교사의 비전에 대한 기도의 결론 및 목사님들의 기도가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의 근거를 자주 놓치며 우선된 성도됨이 잊혀져가다보니, 목적은 뒤바뀌고 은혜 자체가 나를 치장하는 가면이되는 기복신앙이 반복해서 불쑥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흘려보낼 사랑엔 ‘열심’인데 정작 채워지지 않아 메말라가면서도 어른인 채 하던 저의 모습들... 차츰 성장해가며 변화되어가지만, 매달림의 훈련이 필요한 저의 연약함입니다.
화학을 전공하며 유사과학과 관련된 SNS짤이나 웹툰들을 볼 때, 의사가 의학드라마를 보며 웃고 지나가거나 기겁하는 모습들이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점차 과학이라는 분야가 일반인들에겐 접근성이 떨어지는 ‘마법’과 같이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영역에 걸쳐있는 반면, 복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복음과 유사하나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거짓복음.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이기에, 나의 이해범주에서 접근하려던 교만함이 복음의 본질을 흐리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이 세상이 아닌 주님이시기를 원하며, 크신 하나님을 알게되어 저의 작음이 수용되길 간구합니다. 믿음으로 시작됨을 바라봅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길은, 치열함과 바쁜 일상, 성과를 내야하는 업적의 길들에 묻혀 희미해져가는 듯 하나 진짜이신 주님을 바라볼 때, 맹인된 저의 눈이 뜨여집니다. 본질과 비본질에서 고민될 때, 감정과 이성을 덮으시는 사랑을 바라봅니다.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의 계시 속, 순종 (0) | 2019.06.19 |
|---|---|
| 잠잠히, 깨어있는 인내 (0) | 2019.06.18 |
| 음성과 불길이 ‘현재’의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 (0) | 2019.06.16 |
| 깨어남과 피어남 (0) | 2019.06.12 |
| 기도로 씨를 뿌리는 것 (0) | 201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