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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에덴동산의 회복, 도망의 자리가 은혜의 자리로 되기까지

[묵상나눔] 갈라디아서 3:1-9

하나님,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쳐지는(갈3:3)율법주의가 죽어지고, 율법의 주체이신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한번씩 꺼내보는 묵상은 일상에 눌려가던 저에게 살려내는 한모금의 호흡이 되지만, 동일한 상황 동일한 선택 속 내면의 싸움은 맘몬주의와 성공지향, 음란의 죄들에 나를 내어주어 내동댕이치는 듯한 시간이 정작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묵상의 시간마다 한 호흡이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저에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창 3:9) 저를 궁금해하시며 다가오시는 세밀한 음성과 사랑이 저의 죄들로 인해 단절되어 오히려 불편함이나 당혹감으로 다가올때도 많았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해 가장 축복되었던 에덴동산이 도망하고픈 자리가 되었듯, 기도와 말씀앞에 다시 서게 되었을 때 에서야 다시 열려지는 귀와 들리는 음성으로인한 부담감을, 묵상으로 면죄부삼기도 했던 시간을 고백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결론]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듣고 믿음임이 믿어집니다. 위에 적힌 수많은 죄와 면죄부삼던 율법주의로 인한 부담감은 이제,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부담감’되어 성령으로 시작되어 성령으로 마쳐지며, 그 과정가운데 함께하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고 소망을 둘 수 있는 기도의 자리로 인도됩니다. 책망을 받으면 불쑥 올라오는 정죄감의 교만이 철저히 깨뜨려지고, 감사와 겸손을 마중물삼아 제가 제 스스로에게도 가면이 아닌 그 자체로 인정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인정의 주체를 바라봅니다. 침묵의 시기 속, 그러나 주님과 가장 수다스러워지는 때에 날마다 만나주시는 그 음성에, 내가 서있는 곳이 더이상 도망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을 마주하는 ‘기쁜 에덴동산’이 되어집니다. 에덴동산의 회복은 동일한 시간 동일한 환경 속, 이 자리로 주님을 초청하여 그 자리가 천국이 되는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거창한 사명과 의에 오히려 스스로 휩쌓여 잠식당하는 듯 하던 때에, 사명의 이유되시는 주님을 마주합니다. 특별함을 쫓던 감정과 목적의식의 과잉에서, 평범함 속 비범함의 넉넉함을 누립니다. 단지 성도의 마땅한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승리를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이니, 제 마음의 보좌에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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