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갈라디아서 4:1-11
율법과 언약이라는 딱딱해보이고 형식적으로 보이는 단어와 사랑이라는 단어는 대비되는 듯 합니다. 사실 율법 자체는 거룩한 것인데, 율법의 주체를 놓치고 율법의 행위에만 치중되다보니 이 세상의 초등학문아래 종노릇(갈4:3)합니다. 아마 하나님의 은혜는 불확실성인데 반해, 율법은 행동할 수 있는 확실함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이런 행위에 메인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보혈로 씻기시어, 주일설교처럼 행위가 아닌 존재로써의 사랑을 바라보며 거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고난은 피하고 싶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처럼 여겨졌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자 하지만 고난은 피하고자 하는 이원론에서 벗어나, 성경 속 허다한 증인들이 걸어간 그 길을 저도 걷고자 합니다. 결단부터 시작되는 고난의 시간을 해결해야할 과제가 아닌, 다뤄가시는 손길로 여기며 잠잠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최근 직장인 기독대회(IVF 후속모임_종로모임)에 참석하며, 직장 속 사명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이곳이 맞는가, 혹은 아닌가? 하는 기도와 나눔을 통한 결론. 그리고 마무리로 정리해주시며 한병선 간사님과 함께 결론내린 것은, 우리의 원하는 요구(need)를 예비하신 곳이라는 틀에 한정시키지 말 것. 우리의 일천한 경험안에 무한하심을 한정하지 말것... 사실 우리가 무엇을 하던(의사를 하던, 영업을 하던, 공부를 하던....->이런 직업을 행위의 또다른 형태로 풀어냅니다)하나님께선 큰 상관이 없으실 텐데, 무엇을 하는 ‘행위’에 집착하지 말고, 나아가는 과정중에 예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하고 질문을 던질 것. 그리하여 삶에서 계속되는 불확실성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간구하며 함께 나아갈 것을 바라보고 결론지었습니다.
묵상이 이어져오며 계속 질문을 던지고 결론지은, 너무 커다란 사명에 오히려 휩싸여 함몰되지 않는 것. 내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회복된 에덴동산의 소망과 평범함 속 비범함을 누리는 것. 그 결론이 비록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돌아돌아 나아가는 듯 했지만, 결국 방향성은 맞게 나아간다는 것이 확인되고 서로에게 동의가 되어 큰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았습니다. 속된말로 컨셉에 잡아먹힌 컨셉충이 되지 말고, 사명의 주체를 바라봅니다.
돌아가지 말고, 소소한 사명들에 만족하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자원하는 마음과 경청하는 귀 외엔 없음을 날마다 고백합니다. 전도되었던 목적과 도구의 가치가 본래대로 재정립되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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