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갈라디아서 4:12-20
여러 붙여주시는 사람들과 말씀의 계시 속 계속해서 건드려지는 책망은, 순간순간 은혜의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리에서 셀장, 선생님, 조교, 강사, 누군가의 형, 상담가 등등의 흘려보내거나 교육자의 입장이 계속되면서, 때론 너무나 커다란 사명들에 휩쌓여 정작 사명의 주체를 놓치고 제가 받아야할 책망임이 인정되지 않아 귀가 막혀있기도 했습니다. 평범함의 비범함을 바라고 소망하지만 어느새 놓쳐버린, 주님께서 나를 특별하고 존귀한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시는 존재적 사랑이 우선되지 않았습니다. 별볼일없는 저를 보혈로 대가지불하여 예수님짜리의 특별함을 선물해주시니, 다시 그 사랑을 누림 속 이제 그 특별함과 비범함의 주체를 바라보며 평범함을 누리는 올바른 순서로 재정립 되어집니다.
책망을 기뻐받으며 우상삼던 관계의 파산 속 사랑을 바라봅니다(친한 형과의 나눔 참조). 성도로써 마땅히 따라야할 도리를 따르며 열심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 잠시 맡겨진 청소년부의 직분에 겸손함으로 나아가, 가르치는 이가 아닌 함께 양육받는 친구로 나아가겠습니다. 이후 허락된 영적 양육의 자리들에서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며 애통함으로 중보하는 바울과 같이, 한 손으론 예수님을 다른 한 손으로는 약자의 손을 마주잡고 연대함으로 나아가는 길을 결단합니다. 정죄와 책망을 구분짓는 지혜를 허락해주시고, 단지 부어주시는 사랑을 흘려보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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