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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사랑의 종노릇하는 것

[묵상나눔] 갈라디아서 5:1-15

요게벳의노래 라는 찬양이 다시 들린다. 하나님 그 손에 나의 삶을 드리는 것. 나의 것을 내어드리는 손해로 여기던 셈법은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고난의 축복 속 존재적 사랑을 다시 누리며, 작은 갈대상자 속에 뉘인 아이의 입장에서 수고스러운 손길을 느낀다. 아이가 뉘인 갈대상자에 혹여 물이 스며들까 역청을 바르며, 강물에 흘려보내는 요게벳의 심정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눈물흘리는 모습 속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를 둘러싼 갈대상자를 갑갑함으로 여겨 흔들거림 속 불안함을 불평했는데, 눈을 감아도 보인다는 그 눈길에, 과연 나도 마주할 수 있을것인가.

떠내려온 갈대상자는 이제 예수님의 무덤앞에 멈추어졌다. 장사복음 이전에 우선된 온전한 기쁨이 먼저 다가오는 듯 하다. 내가 당도한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이상하게도 나를 보내시고 역청을 바른 수고스러움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십자가의 회개와 더불어 맡겨드림의 의미가 손해가 아님을 알게하신다. 상자를 보내며 흘린 눈물과, 또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신 십자가의 사랑이 오버랩되어 어느새 사랑에 잠기어있는 나를 발견한다.

넘쳐흐르도록 잠기게하시는 그 사랑을 힘입어,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의 종이 되어, 율법의 행위가 아닌 율법의 정신을 각성하고, 이끄심따라 행합니다. 열심이 말씀과 부르심보다 앞서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본래 서로 종노릇하며 공동체적 부분이 언급되었지만, 묵상중에 1:1관계가 더욱 와닿아서 그 부분에 초점)



* 날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나오던 입술의 언어가 잠잠해지고, 주께서 모두 아시나이다.

* 날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감동의 일부와 순간의 결단 그리고 대부분의 무너짐을 구분짓지 않고, 마음의 일부가 아닌 내 온전한 전심을 올려드리니, 주께서 모두 아시나이다.

* 그러니 날 내버려두라는 계속되는 부인함을, 당신께선 너무도 강렬한 부르짖음으로 들으시고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물으시니, 주께서 모두 아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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