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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성령의 사람

[묵상나눔] 갈라디아서 5:16:26

하나님 참 이상하게도,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우상과 음행, 분열과 방탕함 헛된 영광을 언급하시고 경고하시는 오늘의 말씀에 대한 제목은 ‘성령의 사람’ 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까지는 아니라 부인하고싶은데, 정죄와 책망을 분별하며 삶 속 성령의 말씀하심 속 거울처럼 비춰지는 저의 가능성과 또한 내 삶의 결론들이 몰려오며 잠잠해집니다. 저의 인내의 한계 삼세판을 넘어선 오래참으심의 은혜는 저를 다시 기도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저의 한계와 맞닥뜨리면 도망가며, 내가 아니라고 세번의 몇백배는 부인했는데, 이제는 사랑을 고백하며 수용하게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역청을 바르시며 나의 안전을 바라는 그 눈길과 온정이, 이젠 갑갑하지 않은 노아의 방주같이 여겨집니다. 여전한 흔들림이지만 예수님의 무덤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이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또한 생깁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한하신 사랑을 누립니다. 그런데 십자가’만’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고통스러운 대속하심보다 ‘고통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의 계속되는 과정 속 쓰림만 올라오는 저에게, 예수님의 무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장례식 속 죽음을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정되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비유처럼 관계의 파산함으로 괴로워하는 그 시기가, 인정되지 않고 계속되는 쓰림만 있는 듯 하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와 예수님의 무덤이 균형있게 다가오기를 소망합니다. 분열함의 경고하심은, 나에게 붙여주시는 사람들로 다가옵니다. 때때로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 또한 상황이 잘 풀어질 때 나에게 믿음의 사람들을 허락하시고 붙여달라고 요청을 드립니다. 그렇기에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붙여진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 중심적의 생각을 잠시 돌아봅니다. 때로는 찬양으로 때로는 상황으로, 때로는 기도중 생각들로 삶의 여러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복음의 은혜. 그러나 나의 생각과 입맛에 맞게 바꾸는 복음이 아닌, 전승되는 복음 속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복음을 소망합니다. 직업과 학업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급격히 커져가는 이성적 판단의 비중은 때론 날카로움으로 누군가를 향한 이후에야 후회속 무뎌지는 시간의 어리석은 반복만 될 뿐입니다. 훗날 돌아보며 막심한 후회 속 고백하는 은혜가 아닌, 삶의 작은 기쁨들 속 사랑을 간증하는 삶을 소망합니다. 저의 가시를 면류관 삼아주시는 예수님, 오늘 또한 만나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무덤앞에서 죄와 고통의 죽어짐을 마주합니다. 눈으로 본 것들만 믿고 판단하는 저로써는, 무덤을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잠잠히 바라보고 인정되는 시간 속, 고난은 수용이 되며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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