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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여전한 이순간,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바빠진 일상, 개강과 더불어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과제실험과 더불어 시작된 수업 및 학과 행사들에서 작년과는 다르게 한번이라도 더 나가고 한번이라도 함께하려고 노력중이다. 여전히 사람들과의 관계함은 어색하고 어렵지만, 다행스럽게도 몇몇 행사들에서는 조금씩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아지고 있는 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작년같은경우 심적 불안함과 어색함 그리고 적응 자체만으로도 버겁던, 올 전공수업의 나이많은 학부생으로서의 1년이었다면 이번 해에는 적응해나아가고, 나의 위치가 조금씩 자리잡아가는 시작이었다.

바빠지고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될 수록, 나의 믿음은 여전하다. 바쁨속에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 바쁨을 핑계삼아 잠시 뒷전으로 미뤄두곤 한다. 주일날이면 기도로 눈물 흘리지만 눈물 흘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스스로가 가증히 여기게 되기도 한다. 어느덧 선데이크리스천이 된 것인지. 일상속으로 파송받은 선교사라는 주체성이 옅어지는 요즈음의 일상이다.

스스로의 부족함과 결점을 여실히 깨닫는 중이다. 좋은 사람으로만 남을 수 있는 자리였던 이전 공동체에서의 자리와는 달리, 삶에서의 나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평소의 넉넉해보이고 용납해보이는 모습속, 어느 기준을 넘은 순간 몰아세워버리는 스스로의 기준과 신념이라는 거짓된 이름의 욕심. 평소 화를 내고 풀어버리는 성향이 아닌, 기준을 넘은 순간 단절을 선택하는 나의 극단성을 매일매일 마주하는 듯하다. 열등감과의 싸움속 질시와 마음이 병들어가는 와중 어떤 문구로 인하여 방향성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한계와 마주한 순간 누군가와 싸우게 되면 다 적이 될 뿐이지만, 스스로와 싸우는 순간 모든 사람이 나의 편이 된다는 말과 비슷한 문구였는데, 원망의 대상을 떠넘김이 아닌 선한 방향성에 대해서 돌이키게 된 순간이었다.

한계를 마주한 순간, 베드로가 그물을 손보는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다가오셨다. 어부였던, professional한 그에게 있어 그 조언이란 평소라면 코웃음칠 주제넘는다고 생각될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의 힘이 다 빠진 순간, 예수님께선 깊은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신다. 베드로가 어업을 하던 곳은 생태학적으로 얕은 곳에서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한다. 깊은곳에 그물을 던지는 행위는,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에 더 좋은 자리로 그물을 던지는 것이 아닌, 고기가 안잡히던 평소의 경험이 있는 어부에게 말도 안되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그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진 그 순간, 그물이 찢어질만큼(어부의 그물이라면 분명 찢어지지 않게 엮어서 만들었을 전문적인 도구였을텐데도)고기가 잡힌다.(설교말씀 인용 - 누가복음 5:1-11)

힘이 빠지게 되고, 일상에서의 바쁨속에서도 무력감을 느끼는 이때에, 오셔서 다스리시기를 원합니다. 똑같고 무료하기만 한 일상의 반복속, 말씀으로 인하여 하루가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 첫사랑의 회복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빠지게 되는 영적 카타르시스로 그 절정에 대한 중독으로 인함이 아닌, 그 이름앞에 무엇도 올 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되어지는 회복이기를 소망합니다. 긍휼히 여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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