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주체가 되기 보다는
조금 뒤에서 기도의 조력자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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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짜는 힘과 능력이라는 의가 아닌
한 마디 말씀의 진심 속에 나의 진심을 맞대어 흘러오는 사랑의 전달자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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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용납의 인정을 우상삼지 않고
마땅한 쓰림의 수용과, 이제는 정죄를 불가능의 영역에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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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비가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아비가일이 되어준 것이 기브앤 테이크 처럼, 받기만을 바라는 세상의 사랑을 닮지 않기를 원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흘려보냄의 사랑은, 그 사랑의 주체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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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정과 용납에 저의 모습을 변화시키며 점차 저의 모습을 잃어갈 것 같은 삶을 피하겠습니다. 그리고 선택함은 고백함으로 고침과 다룸받는 자리들로 나아갈 결단을 심으니, 당신의 다뤄가심에 저는 항복이 되어 내 손을 펼쳐 주를 찾고 부르짖습니다. 나의 아버지, 속히 오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나의 요구(want)의 때가 아닌 나의 필요(need)의 때가 가장 시의적절한 방법과 모습과 때로 다가오심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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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의 무용함에 내 입은 침묵이 되고, 침묵 속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저를 변호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젖어들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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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축복삼는다는 가나안의 방언을 흉내내던 저의 입술은, 모든 심판과 고난을 수용하여 저에게로 돌리기를 간구하며 장사복음앞 예수님의 무덤과 연합됩니다. 이젠 고난이 축복이 된다는 것이 전심의 고백이 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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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부활하지 않으시며,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을 함께 완성시키시는 주님.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자라나 그리스도의 신부됨으로 부르심을 받으며 자기를 부인하고 제자로써 발걸음을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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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현하시어 사랑을 고백하게 하심으로, 함께 완성함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기노스코’, 체험을 통한 앎으로 사랑을 노래합니다.
Q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