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고린도후서 1:23-2:17
셀모임시간 같은 셀 형의 나눔을 듣고 마지막날 밤에 빙 둘러 손을 잡던 시간에 대한 통찰이 떠올랐습니다. 서로를 마주하는 그 시간 속, 온전한 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찌그러진 원이나 듬성듬성이 비어보이는 ‘느낌’은 공동체를 바라보는 저의 내면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삶의 여정 속(잠시간)정죄를 불가능으로 두시니, 이제서야 저의 내면 속 제가 마주해야할 부분이 선명해집니다. 마주하지만 마주하지 못한 사랑을, 채우시는 사랑으로 마주잡고 바라봅니다. 바라보지 못하던 사랑을, 마주잡은 손과 하늘로부터 공급받음으로 원이 채워져감을 느낍니다.
불순종과 회개와 오해속, 관계는 쓰림을 부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분을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침묵을 닮아가서 죄에는 어린아이처럼, 믿음에는 장성한 자 처럼 깨어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 제 스스로에 대한 저의 자아상을 돌아봅니다.
* 정체성의 시작은 죄인이 아닌, 자녀됨의 사랑입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으로 자라나, 그 사랑을 기뻐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의 차고 넘침을 우선되게 누립니다.
2.
그리스도의 신부됨으로 부르심을 받아, 언약관계를 다시 점검합니다. 깨어있던 여러 감각이 잠들어야함은, 언약관계의 작은 부분들을 지킴으로 상대를 향한 전심의 존중이 되어집니다. 결론적인, 예수님께로 사랑의 고백이 됩니다. 새 언약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붙듭니다. 나를 사랑하는 또다른 방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3.
제자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갑니다. 제자가 자랑할 것은, 신분이 아닌 십자가 입니다. 공동체의 높아지는 자리를 피하며(성도됨), 하나님의 일하심을 높일 뿐입니다. 잠시 맡겨진 직분일 뿐인 모든 자리들 속, 작은 결단을 내어드리고 다시 성도됨으로 돌아가 마음의 보좌를 내어드리는 모든 순간이 감사함의 순간이 됩니다. 현재의 리더쉽에는 존중과 신뢰를 보냅니다.
4.
왕같은 제사장으로, 모든 권리와 행동의 위에 왕이신 예수님께 보좌를 내어드립니다. 사랑을 누리던 자녀됨이 죄로인해 죄의 종노릇하였는데,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뿐입니다. 죄가 아닌 복음에 종이 되고, 자녀로 누리며 이후의 권리와 행동의 근간인 예수님, 사랑에 매임으로 진정한 자유의 권리를 누립니다.
자녀, 신부, 제자, 왕같은 제사장, 친구... 등등 여러 스탭과 고유한 영역처럼 보이는 정체성은 결론적으로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살아가며 하나씩 잃어가는 정체성이 다시 회복되고 무너지고 회복되는 과정이 반복되며 뜨문뜨문 보이는 듯 합니다. 어제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공동체의 치부를 목회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사랑과 눈물로 적은 책망을 전함으로 기쁨을 돕는 자가 되는 입장과 더불어, 반대로 스스로가 책망을 사랑으로 받는 고린도 교회의 모습 두가지 시선 모두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주하며 손잡은 원이 확장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도 존재하던 정죄의 시선은, 실제로는 저의 낮아진 영적 자존감을 대변함을 고백합니다. 아이가 삶의 낙심으로 떨어져갈 때, 두 가지의 반응이 있다는 말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첫번째는 어머니의 자존감이 낮을 경우, 떨어지는 아이를 부끄러워하며 ‘아휴, 내가 저것때문에 창피해서 못살아’하는 생각을 지닌 경우. 두번째는 떨어져가는 아이의 아래로 내려가 아이의 슬픔을 받아내며, ‘괜찮아’하는 경우. 이것은 자녀교육을 위한 강연이었지만,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아이를 받아낼 자존감(부어진 사랑)의 현재 나의 상태, 그리고 아이를 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 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흘려보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영적 자존감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움받습니다.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오늘’의 신실하신 주님 (0) | 2019.08.07 |
|---|---|
| 평안을 누리는, 눌림받던 일꾼 (0) | 2019.08.06 |
| 위로와 꿈 (0) | 2019.08.03 |
| 하늘의 형상 (0) | 2019.07.30 |
| 신실하심에 신뢰 (0) | 2019.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