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고린도후서 4:1-6
월 화 까지 이어져오던 평안이 다시 분주함으로 바뀐 오늘, 다시 말씀과 기도로 주님앞에 섭니다. 하늘의 평안을 구한 것인지, 상황적 풀어짐의 평온을 구한 것인지를 분별할 지혜를 간구하며, 평온이 우상된 하루였는지를 돌아봅니다.
SNS 앱을 지운지 이틀, 핸드폰의 폴더를 뒤적이며 찾는 손길 속에 중독과 보상심리를 고백합니다. 고행으로써가 아닌 중독의 대체제를 찾는 작은 결단들 속에, 가장 중요한 신실하심을 발견하고 신뢰하는 하루하루가 이어져갈 수 있기를 간구하며 기도합니다.
저에게 완고함이란, ‘이 정도 쯤은 괜찮지않을까?’하는 부분입니다. 가장 은혜롭고 친밀함의 장소였던 에덴동산을 도망함(자책)의 장소로 변모시키는 저의 완고함이 풀어지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 그렇게도 깨고 깨어지기를 원하는 스며든 여러 완고함들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긍휼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음을 주장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의 영역에 속해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드러내고픈 마음을 회개합니다. 크신 하나님,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그저 누리니, 스스로 작아지고자 노력해도 되어지지 않는 저의 작음의 수용과 겸손은 자연스레 뒤따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셔서(고전 4:6)하나님의 크심과 저의 작음이 감사함으로 누려지는 시간을 허락해주세요. 작은 저에게 자랑할 것이 없으며, 복음의 영광의 빛을 전하는 사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초청하심에 감사합니다. 함께 완성해가기를 원하시는 소망을 알아가며, 세상 속 저의 ‘본업’이 세상으로 파송받은 선교사 이며 ‘부업’이 세상의 직업 입니다
내재된 우울을 종종 즐기며, 임계점 근처의 99의(100을 자주 넘어 폭발하게 되는)이어지는 삶은 기쁨을 저의 생각과 입맛대로 가공하는 교만을 부릅니다. 찬양 중 기쁨의 찬양이 잘 들어오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에만 편중되었던 귀와 마음은, 그리스도의 무덤과 연합되며 현현하심의 균형과 함께 온전한 기쁨을 바라보고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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