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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일상영성

1.
결국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의 나는, 일상에 눌려있다.
2.
잘 하고자 달리게 되니, 점차 질책당하는 이유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달리 잘 못해서가 아니라, 기대치가 높아져서 기대치많큼 충족되지 못했을 때. 내 한계치를 마주하고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은 분명 청신호지만, 잘 하려고 할 수록 점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이것은 적신호 이다.
3.
가나안 성도가 되지 않는 것, 예전엔 믿음의 선배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는데... 이제는 이해는 가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아직 붙어있고 버티어낼 수 있는 것은 능력이 아닌, 닥쳐온 삶의 무게가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4.
50년, 7년 그리고 짧게는 7일. 희년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사람의 쉼에도 도움이 되지만 그 목적성에 있어 소작의 능력이 본인이 아닌 하나님께 있다는, 관계회복의 의미로 묵상나눔을 함께하는 분들의 나눔을 살펴보았다. 주일 성수를 지키는 것은 결국, 관계의 회복인데 요즈음 왜이리 아깝게 느껴졌는지.
5.
개인적 신앙이 무너진 상태로, 과연 중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지금은 1:1에 집중해야할 때라는 결론이 맺어진다. 각자의 신앙적 계절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기고, 타인에 대한 계절을 내가 먼저 존중해주어야하지 않나 하는 결론. 중보는 이후 자연스럽게 풀어질 단계이다. 이전엔 중보가 우선되지만 개인기도가 막혔던 적도~
6.
일상 영성, 붙어있는 것만으로 온 힘이 쓰인다. 주변으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고자 하지만 사실은 그저 평범한 사람1일 뿐이다. 연구를 업으로 삼아가고 있고 누군가에겐 신기하게 비춰질 이 일이, 실제로 내 삶에선 그냥 여러 연구원 중 한명일 뿐이다. 예술가 사이에서 예술가A와, 간호사 집단에서 간호사B가 그 집단에서 특출난 특수성이 어디있겠나. 직업의 다양성이 모이는 교회같은 곳에서야 서로가 신기하겠지만, 내 삶의 자리에서 실험이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평범함이 수용이 되니, 결국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인정으로부터 비범함이 시작된다. 평범함의 비범함. 여러 연구원들 사이에서 그저 지나가는 석사1일 뿐인 평범함 속,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것은 결국, 흘러들어온 사랑 뿐이다. 최선의 태도로 Work is love made visible 을 실제 가시화하고, 잘 붙어있음으로 다시 살아내자. 이후에도, 동일한 상황 속 다른 방향성을 지닌 선택을 하자. 선택지는, 이끄심을 따라!
7.
졸리다~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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