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표기도를 하러 앞으로 나갈때면, 설교를 듣는 좌석에서의 시선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어떤 교회는 강대상이 높이 있기도 한데, 높낮이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이 보이는 자리이다. 2014년, 1년간 학원강사로의 경험 이후에는 잊어왔던 그 자리에서의 풍경을 대표기도를 맡은 날이면 가끔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보이는 그 자리. 예수님께선 그보다 높은 곳에서, 그리고 우리의 외향만이 아닌 내면의 부르짖음마저 들으시며 위(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인간의 형상으로 오셔서 부르짖음의 한복판에서 함께 하셨다. 그 한복판을 예배의 자리로 생각해 보았다. 예배를 드릴때 보통 앉게 되는 일반 성도로의 자리에선, 내 주위를 둘러싼 옆자리의 누군가는 설교를 열심히 듣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하고 누군가는 옆사람과 귓속말도 하고 누군가는 삶의 고단함으로 인해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가끔 나의 정죄함의 시선으로 인해 내 눈쌀을 찌뿌리기도 하는 연약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기도시간이 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내면적 슬픔들이 터져나오곤 한다. 나의 정죄함의 시선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어 죽으시고(부활하신 후)다시 하늘에 오르시기까지. 그렇게 죽으시고 오르시기까지. 과연 이 죽음의 의미란 무얼까. 이미 알고계셨고, 또한 그 한복판에서 우리와 함께하신 예수님의 죽음은 '언약 안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죽음'이었지만, 우리는 이 죽음을 일상에서 반복해서 경험하게 된다(생명의 삶, 누가복음 23:44-56인용). 무뎌지는 일상속에서 소망함을 포기하게 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인 일상가운데, 다시금 내 안에 나를 감추시고(나의 죽어짐) 주께서만 드러나시기를. 한나의 기도처럼 주님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기를 소망하지만, 느낄 수 없는 일상의 무기력한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다시금 나를 인도하실 주를 신뢰함으로, 어제의 은혜(썩어질 만나)를 붙듦으로 인한 교만이 아닌, 내일의 만나를 기대함으로. 다시금 무뎌진 일상속 저의 일상을 뒤흔드시기를. 단번에 이루어진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일상에서 다시금 반복되어서 경험 되기를. 내일 또한 죽어지기를.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쟁속의 안주함, 새로운 준비의 시기 (0) | 2017.05.11 |
|---|---|
| 나의 연약함과 마주한 매일 (0) | 2017.04.28 |
| 무뎌짐속, 지루함속, 오늘의 살아냄 (0) | 2017.04.12 |
| 이름없는 꽃 (0) | 2017.03.29 |
| 여전한 이순간, 전혀 다른 새로움으로 (0) | 2017.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