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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스노우볼이 굴러간 이후에, 바라보게 된 주님

[묵상나눔] 눅 8:1-15

예수님, 인간은 부러진 채 태어나 고침을 받고 살아간다고 하죠. 하나님의 은혜가 접착제라고 들었습니다(유진 오닐). 하지만 일상의 바쁨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고침을 간구하지 못하고 부러짐에만 집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스트레스를 빠르게 해소해야할 것 같아서, 기도와 말씀을 찾는 것에도 분주함이 깃듭니다. 그래서 종종 함께 누려야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곤 합니다.

분주한 저의 모습을 기도중에 제3자의 입장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니 참 안타까웠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기도생활의 ‘행위’와 말씀을 묵상하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 종교가 되곤 하는 것은 기도에 집중이 되고 나서야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종교의 중독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문제가 되는 스트레스를 다시 바라보고, 이제서야 해결하시는 주님의 눈동자와 마주합니다. 예수님 오늘 저 엉망이지요? 그래도 오늘 하루 몰입해있던 것들에서 잠시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실은 오늘 말씀을 주제로는 묵상을 이미 해버렸지만, 차마 저의 나눔이라고 생각되지 않고, 끼워맞춘 듯 해서 나눔을 할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부분만을 잠시 다듬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뿌리신 씨앗이 자리잡을 수 있는 마음밭을 위해, 단회적으로 마쳐지는 것이 아닌 인내와 수고로 인내의 결실을 기다리기를 간구하며 또 간구합니다. 잠시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진통제로 말씀과 기도를 찾는 저의 태도를, 주님 긍휼히여겨주시고 은혜를 간구합니다. 주님앞에 엎드립니다. 물을 찾아 채촉하는 저에게, 넌 이미 보았다 그 물이 여기에 바로 내 안에 있다고 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 요즘 여러 스노우볼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다고 여기던 일들이 굴러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한 상황들과 마음들, 스트레스들. 회피하고 싶고 편한것만을 추구한 결론으로 때론 수치들도 감당해야할 때가 있는데, 심판이 아멘이자 은혜임이 믿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작은일에 순종되는 것을 강조하신 이유를 조금씩 알아갑니다. 선한 스노우볼이 굴러갈 수 있도록, 작은일에 충성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저의 손을 떠나가는 작은 일들 또한, 선한 열매로 맺어지기를. 저의 마음밭을, 기쁨으로 갈아엎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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