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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나 vs 너희

[묵상나눔] 눅 22:14-23

Q. 높은 산이 낮아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Q. 나에겐 사랑이 있는 것일까?

예수님, 결국 타인을 넘어 저의 가장 큰 대적이 저 스스로임을 인지하게 되고 다시 만찬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선 스스로의 몸과 피를, ‘너희’를 위하여 붓습니다. 저에게만 초점맞춰진 부으심이 아니었습니다.

종종 묵상이 하나님과의 1:1 관계 속 편지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 트루먼 쇼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 트루먼쇼의 트루먼은 방청객을 인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때때로 권면을 넘어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들이, 만찬의 자리에서 다시금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님께로 돌이켜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때로 관계 속 어려움을 겪을 때, 타인을 성경 속 죄인들로 이입하였던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용서함으로 인해, 결국 스스로를 포로에서 해방시켰던 작은 경험을 통하여 이제 타인이 아닌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죄인됨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러나 사람마다 때가 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저의 생각과 경험이 영적인 우위가 되어 가르침을 내리려는 교만을 깨뜨려주시기를 원합니다. 단지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들로 마주하고있는 여러 신앙의 형태를, 그저 응원과 도전을 받는 것으로 그쳐지기를 원합니다. 높은 산이 낮아지고, 골짜기가 메워지는 은혜는 주님으로 인함입니다. 주님, 혹시나 그 경험과 은혜가 저에게 매우 적절했더라도, 그것이 저에게 한정된 것인지 또한 타인에게도 선한지를 먼저 질문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주님, 여러 상황 속 조급한 저에게, 기다림의 미학과 인내를 허락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기 전, 만찬의 자리에서 예수님보다 먼저 나서서(앞서서)소리를 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 너 뿐만 아니라 ‘너희’를 항하여 부으시는 피를, ‘너희’를 위하여 떼는 떡을 막아서고 있던 저의 마음의 지평이, 주님으로 인하여 넓어지기를 원합니다. 이웃을 향한 정죄도 결국, 예수님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불가능한 사랑을 간구합니다. 회개와 사랑을 간구하는 두 가지를 통해, 만찬을 누린 후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은혜를 간구합니다. 돌이킴의 매 순간은 여러 신호들이 있었고, 그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주님, 스스로의 아픔에 갇히어 분노의 대상을 찾고 있던 저를 건지소서. 저의 감정과 상황이 공감받지 못하다고 여겨질 때, 행동에 대한 지적과 비난이 아닌 자존심을 내려놓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먼저 그 부끄러움마저 드러낼 수 있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관계들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지혜를 간구합니다. 논리적인 지적이나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작지만 솔직한 고백으로 관계는 회복이 됩니다. 1)

ref
1) Facebook(열정에 기름붓기, 소중한 사람과 자주 다투게 된다면 꼭 봐야하는 글, 접속 : 2020.04.01‪, https://www.facebook.com/621566734545525/posts/2755112104524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