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눅 23:11-25
Q. 저에게 사랑이 있습니까? 사랑을 간구하는 태도가 있습니까?
어두운 터널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아마 관계의 문제가 생길 때, 스스로의 억울함과 타인의 잘못만을 보아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을 참고하면, 빌라도는 인간적으로라도 죄를 찾을 수 없는 예수라는 인물을 태형만 하고 풀어주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죄를 부추기는 군중심리에 휩쓸려 넘기는 법조인으로 결국 사형을 판결하는 이로 묘사가 되지만, 세속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더라도 과해보이는 군중의 판결에 인간적으로 보이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공리주의 때문에 떠밀리는 모습을 바라보며(*결국 사형을 내리는 죄인), 저는 신앙인으로써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결국 제 안에 사랑과 믿음이 없으니, 언행은 불일치가 되고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세우는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을 위해서, 제가 참아왔다고 생각했던 여러 권리와 자존심을 먼저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사랑없던 여러 노력과 판단 속에 스스로 갇힌 자 되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음성에는 귀를 막고 스스로의 악만 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가는 이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고, 깨닫고, 생각해왔습니다. 성장한 사람의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이 사랑을 저에게서 아무리 찾아보고자 한 들, 불가능했습니다. 주님, 저에게 사랑을 부어주시기를 원합니다. 타인의 원망에 저를 변호하기보단 내어주겠다는 초반의 결단은, 생색을 지나 이제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권리를 포기함으로 드려져야 가능하다는 것이 인정됩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 회복을 중보하겠습니다. 제가 참아오거나 인내한 이상으로, 누군가도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위로와 평안을 허락해주시기를.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눈물 흘려준 이들로 인해, 지금의 제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눈물로 기도할 수 있는,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지킬 수 있는 이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사랑이 부어질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사랑을 놓친 모든 사역과 좋은 말들과 합리적인 말들은 모두 무의미 합니다. 사랑이 없으니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주님, 사랑으로 인하여 시작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렵고 좁은 길을 결단할 지혜를 주소서. 그 마음또한 주장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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