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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순종의 의미의 재해석

순종이란 납작 엎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었을까. 나에게 있어 순종이란 그런 것이었었다.

요즈음 착한아이 증후군의 한계(임계점)에 도달하여 감정의 기복이 너무나 심해졌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다른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무언가 대단하다 이런 말도 했던 것 같기도, 그저 이런 나 자체를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친한 동생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더랬다.

'형, 그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아니지 않나요? 처음에 형이랑 친하지 않았을때엔 그저 한없이 착한 형인줄 알았는데 점점 친해지고 나서 느끼는 것은, 스트레스가 많은 형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형은 감정표현을 좀 하고 좋은건 좋다 싫은건 싫다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닌건 아닌​거잖아요.'

음...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는 순종 이었다. 내가 예배때 자주 듣는 '순종'이라는 말은 너무나 귀하고 은혜로운 단어였다. 마치 나에게 익숙한 것처럼 들렸었다. 하지만 그 순종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한 나머지, 설교해주시는 분의 그 앞부분 순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머리속에서 지워지곤 했다. 나는 순종이 아닌, 맹신을 합리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노가 없을 수 없고, 시기와 질투가 없을 수가 없는데 마치 그것이 없는 이상적인 사람인마냥 행동하려하니 겉은 평온해보이나, 그 속에 내재된 분노는 괴물을 키워가는 듯 했다. 스트레스가 이제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차올라 임계점에 도달하여, 조그마한 자극에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곤 한다. 이렇게 화낼만한 일이 아닌데도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조절되지 않은채 분노가 쏟아져 나온다던지...

순종으로 향하는 그 여정에서 이제야 그 방향성이 잡혀가는게 아닐까. 화도 내보고, 싫은건 싫다고도 해보고. 되지도 않는 착한사람 코스프레를 벗어던지고 조금은 표현해보려고 한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사람과 대면시에 이런 감정을 표현한다면 주체가 안될수도 있다는걸 인지하고, 우선은 하나님과의 1:1관계에서 먼저 씨름해보려고 한다. 일방적인 원망일 테지만, 그럼에도 사랑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조금은 솔직해져보는 걸로.

공동체를 떠나오게 된 일면에는, 떠나기 직전 터져나올 뻔하던 추슬러지지 않는 감정의 편린을 보게 되고, 또한 착한아이증후군의 부작용으로 사람 그 자체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이런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기회도,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던 상황상 어쩌면 바빠진 일상을 핑계삼아 도주한 것 같기도 하다.

오늘부터 하루 1원망 할건데 받아주실거죠 주님? 더 많아질 수도 있어요 :D 공동체를 만날때엔 밝게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