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사 41:21-29
1. 우상의 인지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우상들이 헛됨을 증거하시는 내용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의 우상은 ‘나 중심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은 저의 위기의 순간 위로와 회복을 시켜주는 상비약으로 여겨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상태가 호전되는 순간 약으로 여기던 신앙을 내팽개치는 것 같습니다. 점차 영적 카타르시스가 내성이 생긴 것 처럼 삶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안정감을 주지 못할 때, 다른 우상을 찾습니다. 한편으로는 묵상의 주체를 주님이 아닌 ‘저의 죄’로 방향설정을 하니, 스스로가 나약한 인간이 되어가는 듯 해서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2. 주권을 내어드림(+방향의 재설정)
한 번 씩 저의 우상이 무엇인지와 제가 주인삼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할 수 있는 삶의 스텝들을 밟아가며, 우상의 인지와 함께 진정 바라보아야 할 주님과 다시 시선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돌아옵니다. 나약해져가는 것 같은 죄의 묵상은, ‘죄를 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변화됩니다. 힘들고 지루해져가던 기도와 묵상은, 따스한 편지와 일상의 대화로 회복이 됩니다.
3. 예수님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신 까닭은 단순히 지고지순한 신적 존재여서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똑같이’, ‘함께’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신은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죽어가셨습니다. 1)
참고한 글의 이 대목에서, 상처입은 치유자이신 예수님이 더욱 깊이 와닿습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아시고’, ‘공감하시는’ 주님.
4. 이웃(결단)
우상이 인지되고 주님을 주님으로써 다시 고백할 수 있도록 돌이킴의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 나 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 부으신 사랑을 삶의 자리에서 흘려보내기를 원합니다. 탁월함보다 “따스함”이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한 사람에게, 따스한 말과 위로 그리고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시기를 원합니다.
ref
1) Facebook(김요한, 무제, 접속 : 2020. 04. 30., https://www.facebook.com/100002512424962/posts/2967360080024377/?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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