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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법률 VS 율법

[묵상나눔] 롬 3:1-20

사람이 만든것은 법률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율법이라고 합니다. 비슷하지만 앞뒤가 바뀐 이 단어는 그 주체가 다릅니다. 법률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지만 때로는 힘있는 자의 정당성을 위해 사용되는 모습을 봅니다. 반면 율법은 기준이 하나님이셔서, 나의 필요에 의해 끼워맞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만약에 죄의 문제가 법률의 문제였다면, 저는 저의 정당성을 위해 돈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찾아보았을 것 같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은 속이 들끓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이고, 따라서 이를 법률과 수단들로 교묘히 가리고 정당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걸릴지언정 쉬운 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죄의 문제가 율법으로 다뤄지니, 먼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과정이 속이 들끓을 지언정 회복이 되고 살아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행히 집행관이시며 저를 변론하시고 주장하시는 분이 함께 그 과정을 동행하시니, 다루어져가는 과정가운데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저의 발걸음과 마음과 생각을 이끄십니다. 기준을 주님께 두는 것, 법률과 율법을 비롯한 삶의 전반에 걸쳐진 많은 부분이 속해 있습니다. 책임의 전가와 정죄의 시선은 단회적으로 고쳐지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의 삶 속 죄의 인정과, 사랑을 누리며 예수님과 동행함을 간구합니다.

지쳐있는 번아웃의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돌파!가 되어지지 않는, 말 그대로 쉼이 필요한 때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때로 은혜로 충만하지 않고 간신히 붙들려 지나가는 시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자책하지 않는 지혜를 구합니다. 번아웃의 시기를 지나면서야, 이제서야 지쳐있는 이들에게 돌파하라는 말보다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늦게나마 들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일 수도... 자원하는 마음과 경청하는 귀 외엔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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