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롬 15:1-13
하나님의 음성은 결국,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거쳐야만 흘러나올 수 있다는 나눔을 어제 IVF 직장인기독대회(종로)에서도 동일하게 들려주시는 걸 보면서, 결국 사탄은 박쥐의 날개를 하고 무섭게 생긴 괴 생명체가 아니라 우리가 지배를 받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엔 이를 거쳐가는 생각과 마음을 흔드는 것에 있다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사탄이 결국 동일한 곳(생각과 마음)을 통해 나온다니, 엄청 중요한 통로라는 경각심이 다시 듭니다. 항상 기도중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고’ 라는 말들로 의탁기도를 드렸던 이면에는, 정죄감으로 이웃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던 부분을 경계하고 또한 돌이킴을 위한 권면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점을 보는 것은 본능이고
장점을 보는 것은 재능이다 1)
예전에 이런 글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특별히 누가 더’ 잘 본다기보다, 타인의 단점이 잘 보이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닌 본능 같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이것이 잘못되었다 라고는 못하겠는게 저조차 본능에 충실하고 내면을 다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술에서 나오는 재능의 영역은 그래도 꾸준한 훈련을 통해 어느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희망과, 저에게 없는 사랑을 간구함으로 다시 힘을 내어봅니다.
주님,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것은 어쩌면 감사함입니다.
이 질문들은 생각이 고이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생각이 고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이 고여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외로움이 고일 시간조차 없는 것일지도. 이렇게 생각하면 외로움도 외롭지만은 않다.’ 2)
비슷한 맥락에서 질문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급부로 영적인 건강성과 회복에 대한 희망을 대변하는 것이라고도 여겨집니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이제 말씀은 약점을 담당하는 것만을 넘어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의 힘으로는 불가능의 영역인 율법의 목적을, 사랑으로 두고 나아감을 간구합니다. 의무감에 매어있던 저를 건져내시고 사랑에 잠기어가길 간구합니다.
단점을 보는 것은 본능이고
장점을 보는 것은 재능이다
주님 다시 동일한 글을 사랑을 기반으로 다르게 해석하고자 합니다. 잘 보는 것 또한 재능의 영역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준으로썬 장 단점을 구별해서 선을 그어두었지만, 도구를 쓰시는 주체가 주님이시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부족함을 잘 볼 수 있기에, 어떤 부분을 채워주어야할지에 대한 아이디어와 사랑이 샘솟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능을 재능의 영역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도약이 아닌, 부음받은 사랑으로 인한 새로운 관점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심으로 선한 방향성으로 이끌어가심에도 감사합니다.
인간은 부러진채로 태어나 고침을 받으며 살아간다. 주님의 은혜가 접착제다.3)
우리는 저마다의 상황과 이유로 부러진채 태어났고 계속해서 부러져가고 바스라져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제 나눔속에서 먹먹함가운데에서 연약함을 나누는게 오히려 회복이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웃 그리고 동역자와의 나눔을 통한 위로를 허락하시고, 접착제를 더욱 견고히 하심에 감사합니다.
서로에게 각자의 이유로 무너짐이 있듯 저의 연약함이란, 묵상을 꾸준히 해나감에도 불구하고 무너져있는 삶입니다. 업무와 관계로 인한 지침으로 인해 넷플릭스를 보는 것 조차 쉼이 되질 않아서 결제만 하고 계정유지만 되어가는 일상입니다. 지쳐서 누워서 쉬다보면 외로움이 올라오고 계속 다른 종류의 이유들이 떠오르며 온전한 쉼은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부 멘토의 자리는 의무감만이 남았고 예배와 공동체는 기쁨과 기대가 되질 않기도 합니다. 육체적 피로에서 시작된 연쇄적인 무너짐 속에서 계속 새어나가는 내면의 질그릇, 흘러나가는 사랑을 막으려해도 차츰 틈이 벌어져가고 제가 손댈 수 없는 삶의 균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저 휴가 하나만을 바라보며 버티는것도 한계에 다다른 일상이 인생노잼과 겹쳐옵니다.
그러나 의무감일 지언정 출석이라도 해 나가는 멘토의 자리는 아이들을 통해 저를 붙드시는 강인하신 팔을 다시 인지하게 하십니다. 섬김의 결단이 회의감으로 모두 대체되어가는 때엔, 가진 것 하나 내어드릴 수 없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있게 알게 하시고 내면공사를 다시 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다시 주님께로 시선을 맞추도록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ref
1) 약간의 거리를 두고, 소노 아야코, 책 읽는 고양이(2016)
2) 외로움을 씁니다, 김석현, 북스톤(2020), p148
3) 필립 얀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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