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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공동체란?

교회를 오래 다니다보면, 공동체에 대해서 많이 듣게 되고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듣게 된다. 십자가에서의 수평적 관계에 대해서 듣게 되고, 실제로 중보기도의 힘에 대해서 함께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알게된 후에는 공동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리고나서 지금, 잠시 공동체에서 다시 한발짜국 떨어져있는듯한 시기 속에서 공동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길어지면 안될 지금의 아슬아슬한 상태속에서 한가지 좋은점은 공동체에 대한 나의 생각 혹은 정의가 되어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공동체란 이런 것 같다. 사람 혼자서 누군가를 잡아줄 수 있는 최대치는 양손으로 두명, 그리고 안아줄 수 있는 이는 한명일 텐데. 그 한사람 한사람이 모인 공동체란? 손을 마주 잡은 그 연결선이 만들어내는 어떤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 혼자서는 한 사람을 안아줄 뿐이지만, 마주잡은 손의 연결로는 그 공간으로 여러사람 그리고 여러 무리의 사람을 품고 또한 그 연결선이 확장되어가는게 아닐까하는. 그리고 마주잡은 그 나머지 한 손으로는 예수님을 잡은 그 곳으로부터의 흘러나온 사랑이 연결선 전체에 흘러서 사랑으로 품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지 하고. 이전에 수평적 관계에 대한 공동체의 정의에 대해 맞는 말이지만 멋있어보이기만했지 어려웠고 이해안되던(어쩌면 내가 빠졌거나 채워야할 부분에서 충분히 채우지 못했던 공백기 때문일지도모를) 공동체에 대한 정의 부분들에 있어서 자기 체화의 시간또한 필요했었나보다. 사실 고분자를 공부하다가 묵상이 되던 부분이라, 한손으로는 예수님을 잡고 한손으론 공동체를 잡는다면 (결합할 수 있는)남은 손이 없을진대 복음을 전해야할 어떤 이에겐 어찌 손을 내밀지 오히려 이 부분에서 발목잡히었었는데, free volume과 관련해서 생각해보니 밀착되지 않은 쉴 수 있고 사랑을 느끼는 그 공간으로 인한 공동체의 사랑이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마주잡을 힘조차 없는 이를 잡아끌어내는 선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하려 잡은 손마저 놓치는 것이 아닌 그저 만들어진 공간속(받은 사랑으로)품어낼 수 있다면, 강요되어지지 않는 그러나 충분히 기분좋게 이끌릴듯한 매력적인 사랑의 향기라면? 하는 생각. 그리고 합리적인 계산적 부분에서도, 한사람 한사람의 추가는 면적 및 공간의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수치적 증가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례관계가 아니라 그 몇제곱만큼씩 커지는 그런...그리고 이런 계산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그 속에서 흐를 사랑의 총량은 얼마나 클까? 뭐 이런 생각도... 한사람 한사람의 추가는, 수치적인 1+1+1그리고 +1이 아닌 차원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 한사람이 다가올때 그 사람의 인생이 다가오는 것 같아 관계에 있어서 항상 신중해야할것을 권면하셨던 목회자님의 말씀처럼, 이것은 그 인생이 추가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저, 공동체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고 생각해본 하루의 끄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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