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겔 9:1-11
다른 곳이 아닌 성전에서부터 시작되는 긍휼이 없는 심판은 경건의 책임을 지닌 늙은 자(장로)들부터 시작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르는데, 이것을 저의 일로 적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바벨론 1차 침공 전에 의인이 없었으나, 심판 앞에서 ‘의인과 악인’이 아닌 ‘회개하는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로만 나뉘었듯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애통함으로 돌이키는 시간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기도와 묵상은, 일상에서 겨우 버티고 견디어오던 저를 나약하게 하는 듯 하기도 해서,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채 그저 움켜쥐고 하루하루를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 에스겔서를 따라가며 다시 주님을 주인으로, 붙들고 나아감을 원합니다. 정결과 거룩함으로, 십자가의 은혜로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견딜 수 있음을 믿음으로 나아감을 간구합니다.
온라인 개강으로 청소년 혹은 그보다 저학년 아이들에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기의 격차의 문제, 관계를 맺어가지 못함으로 생기는 어려움과 온라인 전학과 같은 생소함도 겪습니다. 캠퍼스에선 화상앱을 통해야해서, 보이기 싫은 삶의 자리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코로나가 지나면 자영업자가 괜찮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온라인 소비가 익숙해지고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도 자영업자이신데, 갑작스런 변화들에 충격을 받는 이들의 상황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그리고 제가 갈 수 있는, 가야하는 곳이라면 그곳으로 나아가기를. 제가 행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가서 오프라인 소비를 하는 정도의 작은 일입니다.
주님, 이 시기에도 기도와 말씀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삶의 공동체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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