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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고난을 넘어, 회개의 자리

[묵상나눔] 시 13:1-6

시편은 노래의 형식으로 욕설을 부드럽게 풀어놓았다는 표현을 얼핏 들었던게 기억납니다. 현실을 근심하고 토로하는 다윗의 솔직함은 입체감있고 ‘공감’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큰 “죄”가 아닌 큰 ‘고난’속에서 부르짖은 요나의 상황과도 오버랩되는 듯 했습니다. (다르게 적용해야겠지만, 떠오른 부분과 강조를 위해 요나서를 붙입니다.)

최근 논문준비와 공허함에 허덕이며, ‘잃어버린 복을 회복하고자 하는 죄를 관리하는 기법’ 정도의 수준에 그친 기도의 수준을 고백합니다. 유산으로 받은 신앙생활을 넘어, 선택하는 단계로 나아간다고 자만했던 교만 또한 고백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을 비웃고 자신을 더 나은 인물, ‘찬양’의 노래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로 자처했던(욘2:9)모습을 저에게서 자주 발견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하고 고백하는 “회개”의 자리로,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을 마주하는 자리로 이끄십니다. 그 이후에야 제 생각과 상상을 넘어선, 하나님 자체를 바라보고 조금이나마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탕자임을 인정할 수 있는, 돌아갈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1)

공연을 준비하지도, 축하영상을 찍지도 않아서 편하지만 동시에 이상했던 성탄절을 무사히(?)넘겼습니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평범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회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매년 바쁘게 축제를 즐기며 지나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세상의 ‘공허함’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공연으로 spot light을 받는 주체가 저 였을때엔 잠시 흐려졌던 주인공을 생각할 시간을, 하지만 뜻 깊었던 기부경매를 준비한 임원진들의 노력을 생각해볼 시간. 이 모든 시간에 감사합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만큼 연인이 없어 밀려오는 공허함에 휩쌓인 듯한 느낌은 처음입니다. 이웃에게 먼저 다가서고 약자와 연대할 수 있는 근간이 되도록 이 순간을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제 보잘것없는 재능과 재정이, 누군가의 공허함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는 흘러갈 사랑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좁은 길을 우월감 없이 걷고, 고난을 부르짖는 자리를 넘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감을 간구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따스함을 흘려보내는 다정자본을 쌓는 이가 되기를, 주님을 닮아감을 간구합니다.

ref
1)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래리크랩, IVP(2020), p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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