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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영적인 근육, 다시 시작하고 적용하기

[묵상 나눔] 눅 6:39-49

'오늘'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고민해봅니다. 요일을 잊어버린 바쁜 일상 속에서 묵상과 기도는 우선순위에서 배제되고, 영적인 근육이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펼쳐 든 성경이지만 운동을 몇 개월 쉬었을 때 빠진 근육처럼, 이전의 온전한 근육을 기대하기보다 현재의 상태를 돌아보고 새롭게 키워야 하는 근육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될 것 같습니다. 어제의 은혜(영적 근육)로 오늘을 살아내려는 교만을 낮추시고, 주님께 고침을 받으며 나아감을 간구합니다.

주님, 본문 바리새인의 모습이 저 자신의 연약함으로 읽히고, 삶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영적 우월감을 내려놓고 자신을 먼저 바라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요즈음의 세상은 TV, 라디오, 신문과 같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매체가 약화되고, 유튜브와 같은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진 매체가 강화되면서(각 매체의 장점과는 별개로)서로의 세상이 달라지고 단절된 상태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절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저의 교만을 봅니다.

세상과 교회를 구분 지으며 정작 다르게 살아가야 할 목적인 "사랑"을 어느덧 잃어버렸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어쩌면 영적 우월감과 타인에게 냉철하고 가혹한 잣대만을 들이미는 죄인 중의 괴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점으로 종종 활용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서 각자의 이야기들과 주장을 보다 보면,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삶을 인정해야한다는 결론과 그 부분이 부족한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보통 이럴 때 저의 반응은 왜 이런 당연한 것에 대해 저렇게 생각하고 반응하는가? 하는 '황당함' 이었던 것 같은데, 무의식중에라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정죄하던 부분이 고침받기를 원합니다. 이럴 때야말로, 타인을 인정할 수 없었던 저의 무지를 인정하고 존중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매일성경의 우측 맨 위에는 항상 동일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오늘 이 질문이 유독 크게 다가옵니다. 주님, 위의 고백은 저 스스로에 맞추어진 고백과 반추하는 부분이라면, 하나님은 이런 저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결론을 어렵지만, 청원에 가까운 형식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저라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는 부탁에 가까운 고백을 드립니다.

삶 속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는 자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실제로는 논문 준비로 조급함에 휩싸여있고, 랩실 동료들의 도움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평범에 오히려 미달된 모습과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저임을 고백합니다. 타인의 흠결을 덮을 수 없던 저에게, 덮을 수 있는 사랑을 주십시오. 연차가 쌓여가지만, 압박감에 눌려있는 현재의 제 모습 속에서 이후에 동일한 어려움으로 힘겨워하는 누군가에게 담담히 손 내밀 수 있는 겸손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의 간극이 큰 저의 내면을 메우시는 그 사랑을 간구합니다. 메워진 그 사랑으로, 행하는 이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가 단절된 세상 속, 사랑이라는 교집합을 "함께" 이끌어내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 회복되기를 간구합니다. "함께"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