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눅 19:11-27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길의 마지막 단락인 오늘 본문은 열 므나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러 접근법이 가능한 본문을 "귀인"엔 "주님"으로, '므나를 받은 종들'엔 '저의 여러 가능성'으로 대입해보고 묵상해보았습니다.
므나의 비유를 든 목적을 무리들은 개개인이 당대에 당하던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길 소망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으로 생각(11절)하는 것과 달리, "시간이 걸리는 것"임을 설명하고 그 과정중에 므나를 다루는 예시로 비유하십니다.
주님, 본문을 묵상해오며 맹인과 삭개오 그리고 본문의 무리들까지 연결되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압제로 여겨지는 어려움에 휩쌓일 때, 즉각적이지 않은(귀인이 왕위를 받으려 갔다가 돌아오는)시간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미" 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기 위해, 제가 원하는 때에 즉각적이지 않은 시간을 충성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을 깨우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맹인이 눈을 뜨고자 하는, 그리고 삭개오가 나무에 오르는 목적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으로 소망이 변화되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논문 마무리단계에서 계속된 조급함과 풀리지 않는 정체기, 타인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품기위해 들이키는 한숨 등 여러 몰아치는 상황이 주변에 산재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동행하시며 저에게 풀어낼 수 있도록 맡기신 므나임을 감사함으로 여기며, 열 므나가 어떤 충성됨으로 이어질지를 고민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잘 보는 것과 잘 품는것의 차이를 언급했던 시간이, 이제 체화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잘 품고, 또한 저도 잘 기댈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감을 간구합니다.
*타인을 향한 지적에 앞서, 저의 부족함을 더욱 알게 하시고 겸손케하시는 말씀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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