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나눔] 잠 20:1-15
오늘 본문의 말씀중 크게 찔린 부분,
6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스스로를 괜찮게 보고 다른 사람을 낮게 만드는 교만에 빠진 사람, 그 교만에 빠진 이가 바로 저입니다. 주관을 벗어나기 어렵다지만, 제가 경험해오고 생각하는 한계 정도를 벗어나는 게 어렵습니다. 개인의 신앙적 경험이 오히려 정죄의 도구가 되곤 합니다. 타자중심을 지향하기 위해 불가능에 가까운 용서나 존중 등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해낼 힘을 주님께 구하지 않고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며 여러 정당화로 덮고 넘어가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살아가며 드는 여러 억울함의 감정은, 저를 지키던 "기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기준을 벗어날 때, 모든 죄는 정당화가 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적당히 지키고, 그것을 크게 보며 인자함을 자랑하곤 하는 교만을 올려드리고 긍휼하심을 간구할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주님. 그것을 모르겠습니다. 알려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머리론 알지만, 실제 아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무엇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건드려지는 그것들로 인해 오히려 주님을 깊이 알아가는 시간되게 하소서. 생각을 덧대는 것은, 후술자가 유리하게 보일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덧댐은 언어의 폭력성을 포장해서 드러내는 정도에 그치기 일쑤입니다. 이 시간들이 무엇을 덧대는 시간이 아닌, 주님께 고백하는 시간이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되게 하소서. 누가 더 옳은가? 의 한계로 빠져들수록, 주님과 멀어집니다. 다른 질문을 던지기 원합니다.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주님, 제 안에 어떤 선한것들이 있습니까? 각자의 억울함 속,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를 허락하시기를. 말씀을 지켜내어, 말씀으로 지켜지는 삶을 간구합니다.
# 기울어진 마음의 고백
누군가를 향한다는 건
그만큼 기울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우산은 혼자 쓰면 똑바르지만
함께 쓰기 위해선 기울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1)
어깨가 조금 젖어들어도
기울어진 만큼 그것이 괜찮은 건
기울여진 것이 때론
똑바르게 '보이는 것' 보다 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젖어있어도 조금은 더 "따스하다".
"따스함"을 구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어깨의 젖음.
그리고 어깨는, 생각보다 빨리 마른다.
어쩌면 기울어진 건 내 시선.
기울여야 오히려 바로 설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
현재 나는 이웃에게
얼마나 기울어져있는가,
그리고 기울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ref
1) 신한은행 기업PR CF 중, "마음을 기울입니다" 를 참고 해서, 생각을 덧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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