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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사랑의 시선

  사랑의 의미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뀔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요즈음 꼭 필요한 시기속에서 느끼는 사랑이란, 우선된 속죄 이다.

속죄라고 하면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고 너무 무겁게 여겨지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 내가 말하는 우선된 속죄란 그렇게 슬프지만은 아닌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한때는 나에게 다가오는 관계의 상처속에서 허우적대며 한번씩 가뭄에서 갑작스러운 홍수가 넘쳐나듯, 수련회와 같은 특별하게 여겨지던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던 시기가운데 느끼던 사랑이란 의미는 '용서'였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던 '용서'의 의미란 실제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었다. 내가 사용하던 그 용서라는 단어는, 나를 향해 상처를 주던 누군가가 물론 밉고 힘겹게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 한다는 느낌의 용서였다. 물론 그당시의 내가 사용하던 용서라는 단어는 상대방이 잘못한 주체라는 것이 정해져있었고, 나는 선량한 피해자일 뿐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 까짓거 해준다. 이런 교만한...;;느낌의 용서였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이런 생각이 담긴 일기를 한번은 군대에서 괴롭히던 간부에게 들키게 되고, 너무나 부끄럽고 숨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받아들여지는 나의 피해의식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점차 성장해나아가면서 상대방도 나를 힘겹게 여김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용서라는 것이 실제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 때 즈음, 그보다 앞선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우선된 속죄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남에게 먼저 전가시키던 나의 시선을 돌이켜 나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 너무 장황하게 적어놓았지만, 쉽게말해 똥묻은개가 겨묻은개 나무란다고 했던가? 남을 비방하기에 앞서, 나를 바라보게 되면 진짜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주님, 저의 죄와함께 죽고 이제는 주와함께 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마음을 주장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힘입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은 멀리있는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의 저일지라도 사랑해주시는 주님. 저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신 주님. 그 사랑을 강요하지는 않으시는 주님. 여러 율법서들로 무섭게 겁을 주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저희가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끙끙 앓으시고 전전긍긍해하시는 주님. 그리고 제가 손에 잡은 것들을 비로소 놓게 된 주저앉아 무너진 그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그저 안으시고 함께 울어주시는 주님. 생각이 너무 많고 스스로의 기준들에 갖혀 옥죄어가는 듯 하던 저에게있어 그 사랑이란, 자유로이 뛰놀 수 있는 너른 품이십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