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소그룹에서의 나눔은, 삶의 자리에서의 어려움들을 그 자리에서 나눌 수 없는, 어쩌다가 술 한잔을 걸치고 나서야 꺼내놓을 수 있는 속 깊은 대화들이 나올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고, 삶으로 파송받은 선교사이다. 힘들고 지친 이들이 스스로 찾아올때(찾아갈 때-강요되지 않는 신앙으로) 그 삶의 고단함을 듣는 내 태도는 어떤 태도였을까?
묵상간증에 소그룹 셀원이 떠나간 사건에서 떠나간 이유에 대해, ‘CEO인 당신이 내 회사의 임원처럼 느껴진다.’는 대답에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종종 나오는 선생노릇하려는 교만의 영과, 다 아는 듯 말하며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는 미숙한 태도들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삶의 자리에서 내 위치를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는 조교로 취급 받으며 내가 의도하던 그렇지않던 내 발언권이 힘이 실리는 때이다. 자주 놓칠뻔하던 마음의 중심에서, 받은것을 기억하고 준 것을 잊어버리자는 내 인생의 철학은 무너지기 일쑤였다. 과연 내가 준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나의 힘으로 쥐어짜내는 것인지, 부어주시는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인지를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다.
마음을 전함에 있어서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어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이 시기가운데, 앞서거나 뒤쳐지는 것 없이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이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 또한 누군가와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 조금 천천히 걸어달라고 말해야하는데 종종 제 내향적 성격이 다가서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시기를. 가장 우선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남은 한 손으로는 다른 이를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을 허락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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