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7
저의 마음이 부담스럽고 어려운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예수님을 향한 갈망이 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의 마음이 요동치는 것 이상으로, 저의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리시며 찾아오시는 주님. 내 앞에만 계시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마주하게 되는, 삶의 모든 순간들에서 찾아오시는 그리고 뛰어드사 잠기게하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주저앉아 부서진 저의 마음은 다시금 이어붙여지고 그 사랑이 차오릅니다. 여전히 ‘Advent, 그리스도의 재림’은 저에게 소망이며 동시에 당장 임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의 때입니다. 솔직하게는 당장은 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을 얼마나 갈망하는지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의 척도로써는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재림을 갈망하는 마음이 너무 들쑥날쑥이라, 내일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있을 지금의 이 갈망의 상태가 두렵습니다. 저의 영적인 상태가 괜찮을때에 찾아오시지...하는 투정도 부려봅니다. 그러나 저의 노력이나 업적이 아닌, 온전함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저의 삶을 올려드립니다. 괜찮지 않은 부분조차 숨어지지 않고 함께 붙들고 나아갑니다. 부러진채 태어나 은혜라는 접착제로 고침을 받으며 살아가는 저의 삶을 주관하시고 다스려주세요.
여러 이유들에, 상황과 조건들에, 스스로 판단해가던 삶에 잠기어가던 때에. 절어버려 심지조차 타오를 것 같지 않은 저의 중심에, 성령의 불이 옮겨심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불은, 평소 너무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하게 여겨지던(절어버린 저의 속성과는 반대의)말씀을 통해 흘러들어옵니다. 무너진 저의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며 스스로를 안타까워하며 관조하던 관찰자로써 저의 모습에서도, 그 옆으로 조용히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토닥이시는 예수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서 문제를 바라볼수록 더욱 아파하는 저인데, 누군가 찾아올 수 없을 것이라 여기던 관조자로써의 시점 그 자리에도 찾아와주시는 주님. 마법처럼 뚝닥 해치우실 법 한데도, 저의 손과 포개어주시며 함께 다듬고 함께 살아내어보자는 그 손길과 인도하심에, 재를 뒤집어쓰고 엎드립니다.
욘 3:6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저의 마음의 보좌에서 일어나 치장하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죽은것이나 다름없는 쓸모없는 재를 뒤집어쓴 채 돌이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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