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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때

[묵상나눔] 열왕기상 18:16-29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저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의 사백오십 선지자들의 상황이 기준에 대한 싸움으로 묵상이 되었습니다. 저의 가치관과 기준은 과연 한가지인지 돌아봅니다. 점차 많아져가고 옳아보이며, 합리적으로 보이는 기준들로 인해 경계가 모호해지고 무너진 모습도 보게 됩니다. 세상의 기준은 사백오십 명이나 되는 바알의 선지자와 같이 그 세가 대단해보여서 대세인 것 같기도, 그것이 옳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엘리야라는 단 한명의 선지자를 통해서 외칩니다. 기준이 무너져가는 이 때야말로, 나를 따를자 누구냐! 하는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나아가야할 때임을 믿습니다.

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바알을 신으로까지 여기는 백성들을 조롱하는 엘리야의 외침입니다. 그 많은 선지자(?)들을 거느린 바알은 정말 응답이란걸 해야할 때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많은 위세가 허망합니다. 하나님의 단 한 사람, 엘리야 선지자에게 이 상황 자체가 어처구니 없을 것 같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돌이킴을 권면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고 기다립니다. 저에게 적재적소에 보내주시는 한명 한명의 엘리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돌이킴의 권면에 바로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준들에 혼란을 느낄때가 많았지만, 또한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새기고 다시금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성도됨으로, 그리고 혹 때때로 허락될 수도 있을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그 순간에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반짝이지 않아도, 오바댜로써의 부르심도 또한 기쁨입니다. 기준이 재정립되고, 주어진 삶에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해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Advent :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님, 대림절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립니다. 매일의 재림 속에서 오늘 또한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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